10. 정신 차려, 뇌 꽉 잡아_As I Believe

어느 40대 여성의 덕질하는 하루

by 흔적작가


빠지는 건 한 순간이다.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얼음이 투명 플라스틱 잔에 부딪친다. 반원 모양의 투명한 뚜껑. 곡선을 따라 올라가면 머리 위에 둥근 원이 뻥 뚫려있다. 빈 공간에 주황색 빨대가 보인다. 입술을 움직여 빨대의 색을 바꿔본다. 음, 명도가 약간 내려갈 뿐 큰 차이는 없다. 아이스아메리카노. 빠져나오기 힘든 녀석이다. 플라스틱 빨대에서 입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액체는 센입천장이 내게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곧장 여린입천장을 타고 식도로 넘어가는 차가움. 위로 넘어온 짜릿한 시원함이 위의 위치를 뇌에게 각인시킨다. 음… 내 위가 여기에 있었군. 잠을 깬 뇌에 생각이 따라 들어온다. 나 중독인가. 중독 맞지. 커피는 당분간 그만 마시고 다른 차를 마셔야겠다.




잠깐, 뭘 그만 마신다고. 지금 그런 말이 나올 땐가. 정신을 놓고 있는데. 설마… 정신 놓고 있는 줄도 모르나. 에이, 알고는 있겠지. 요새 정신줄 내려놓고 있는 거. 중독이면 좀 어때. 카페인 한 두 번 마시나. 다른 차를 마시겠다고. 뭐... 홍차, 녹차, 보이차, 재스민? 이 차들도 카페인 있다. 그러지 말자. 뇌야. 유자꿀차, 생강꿀차, 레몬꿀차라. 눈도 돌리지 마. 혈당 올라간다. 루이보스, 페퍼민트, 마리골드, 히비스커스 좋다는 거 알지. 알고 말고. 마셔야지. 잠자기 전이나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이사이에 마시면 되지. 지금 필요한 건 차디찬 아이스아메리카노 투샷이란다. 마시렴. 마시고 눈을 떠라. 뇌야, 정신 좀 차려야 해.


투샷 마시고 정신차리자.


어떻게 3주가 지나가도록 한 글자도 안 쓰니. 저 반짝이는 아이패드 보이지. 영롱한 파란색 무선키보드 보이지. 눈이 너에게 신호를 주잖아. 놀고 있는 손가락이 방황하는 거 안 보이니. 여기 아이패드와 무선키보드가 있다. 어서 전원을 켜고 글을 써라. 써라, 써라. 들었지. 봤지. 근데 왜. 왜 그러는데. 반항인가. 더는 안 되겠다. 쭈욱 주황색 빨대를 빨아라. 위가 짜릿해질 만큼 차가워져야 정신을 차리는 뇌야. 빨대가 공기반 액체반이 될 때까지. 끝까지 빠르게 목구멍으로 넘겨라. 이빨이 시리다고. 쪼-옴 참아봐. 아니면 빨대를 더 깊게 물어. 이빨이 닿지 않게. 스톱. 가라앉지 마. 얼음이 동동 떠있잖아. 이때 마셔야지. 이때 써야지. 뭐, 아웃 풋만 해서 고갈되었다고. 인 풋이 필요하다고. 휴... 떠있을 때 맛난 거다. 녹아 얼음이 사라지면 밍밍한 맛인 거 알잖아. 채우는 거 좋지. 아니, 채워야지 그래야 나오는 거. 당연한 거지. 누가 뭐래. 근데 채우면서 쓰라고 좀. 쓰는 것도 채우는 거야. 쓰기는 고갈만 되는 것이 아니야. 핑계는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이제 '인-아웃&아웃-인'을 같이 하자. 벌써 다 마셨나. 리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 알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그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힘들다는 거. 가장 힘든 사람이. 가장 빠져나오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그러니깐 깊은숨 한 번만 들이쉬고 내뱉어봐. 귓속으로 들려오는 숨소리만 생각해.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어. 빠져나올 수 있게 나에게 기회를 줘. 썰물에 빠져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숨 쉬는 나를 믿어봐. 빨리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아.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차가운 바다에 녹아 사라진듯해도 괜찮아. 올라갔는데 예전에 있던 위치가 아니어도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깐. 정신 차리고 뇌 꽉 잡아. 리필 나왔다.


정신 차려, 뇌 꽉 잡아
빠져나올 수 있게 나에게 기회를 줘
썰물에 빠져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정신 못 차리는 뇌는 고쳐야 한다.~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래. 하나가 아니래.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네가 외적인 일로 고통받는다면, 너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너의 판단이며, 즉시 그 판단을 멈춰 고통을 없앨 힘이 네 안에 있다.”라고 말했대. 뇌를 믿지 말고 내가 한 행동을 믿어 보는 거야. 힘은 행동을 한 나에게서 나오잖아. 통제할 수 없는 부분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나의 행동에 신경을 쓰는 거야. 뒷걸음치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 뒤돌아 보면 가장 빠른 길인 거야. 잊지 말어. 뇌가 뭐라고 짓거려도. 듣지 마. 어제, 오늘 내가 한 작은 행동 하나를 믿고 손을 팔을 어깨를 움직여. 그러면 발이 다리가 골반이 움직일 거야.




잠만 잤다고. 다행이야. 몸이 휴식을 취했으니 일어날 힘이 쌓였겠다. 먹기만 했다고. 잘했네 잘했어. 먹었으니 영양소가 몸속 세포에 가득 쌓였겠다. 잘 먹은 세포 하나하나의 힘을 무시하면 안 돼. 영상만 봤다고. 적절한 소재로 사용될 수 있어. 메모장 준비해. 황금알을 낳는 소재가 나올 수 있으니깐. 이쯤에서 한 모금해. 아이스아메리카노. 느껴지지 차가운 액체가 위를 뇌를 깨우는 거. 눈 떴으면 플레이리스트에서 노래 한 곡 틀면 되겠다. 원래아흔애니 OST에 수록된 'As I Believe'를 재생해 볼까. 충전은 역시 음악과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있어야 해.


충전~~~~중.


가사처럼 믿고 싶다. 믿고 싶으면 확신을 갖고 싶으면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봐야 해. 작은 행동이라도 놓치지 말아야 해. 아무리 먼 길이라도 어제한, 오늘 한 별거 없는 행동들이 나를 살릴 테니깐. 걸을 수 있게 해 줄 거야. 걷다 보면 투명한 유리가 놓인 것만 같은 시간이 올 수도 있어. 고통을 없앨 힘이 눈앞에 보여 손을 뻗지만 닿지 않을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 손으로 느껴지지 않아도 감각이 없는 건 아니야. 이미 믿고 쓸 수 있는 우산은 심장에 있어. 가끔 맑은 하늘이 더디게 오는 것 같으면 마음이 급해지겠지. 벗어나고 싶은데. 나를 믿고 싶은데. 왠지 더 깊어지는 것 같고,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커질 수 있겠지. 달콤한 말들은 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어. 오직 내가 한 그 작은 행동이 고통을 없앨 힘이 될 거야. 움직이는 심장을 느껴봐. 거칠어진 숨소리를 들어봐. 나를 믿어보라는 메시지들이야.

나를 믿어봐
As I Believe
그럼, 이제 글을 써보자.



쉬었으면 쓰자, 이제.



As I Believe -소시정(원래아흔애니 삽입곡)

보고 싶어 너의 모든 상상을 네가 유일한 사람이란 걸 확신할 수 있게
믿고 싶어 네가 했던 약속을 아무리 먼 길이래도 우린 함께 걸어갈 거야
넌 내가 믿고 쓸 수 있는 우산이자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비밀이기도 해
분명 가까웠던 우리 사이에 투명한 유리가 놓인 것만 같아
산들바람처럼 불어온 넌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내 안에 머무는데
닿을 순 없어 그래도 난 느낄 수 있어 너의 숨결과 심장 소리를 걱정과 기쁨을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어 그래도 난 보고 싶어 너의 모든 상상을
네가 유일한 사람이란 걸 확신할 수 있게
믿고 싶어 네가 했던 약속을 아무리 먼 길이래도 우린 함께 걸어갈 거야

너와 함께일 거라고 믿고 싶어
사랑은 더디게 오는 편지 같아서 마음 급할수록 기다림만 길어져
따스하고 포근한 아침 햇살 속에 살며시 네 눈에 입 맞춰
산들바람처럼 불어온 너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내 안에 머무는데
닿을 순 없어 그래도 난 느낄 수 있어 너의 숨결과 심장 소리를 걱정과 기쁨을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어 그거 아니? 내가 보고 싶은 건 너의 모든 상상이야
네가 유일한 사람이란 걸 확신할 수 있게
믿고 싶어 네가 했던 약속을 아무리 먼 길이래도 우린 함께 걸어갈 거야.



아이스아메리카노 투샷~~^^


사진출처 : 픽사베이

가사 : 네이버 블로그(어느 블로그인지 못찾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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