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바를 만났데요. 퇴행성 디스크가요.

불편한 디스크의 힘

by 흔적작가


달리기 15초,
퇴행성 디스크가
허락한 최대 시간이다.

그런데, 지금
무얼 한다고…

주~움~바~아?

그 춤추는 줌바를
한다는 거지.

응, 맞아
그 춤추는 줌바.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제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 있게 되니 궁금해졌다. 나 뛸 수 있을까. 불안하긴 한데. 모험을 한번 해볼까. 언제까지 걷기만 할 수는 없다. 디스크가 건강해지려면 달리기를 해야 한다. 달리면 척추 디스크에 충격을 주어 디스크를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역시 적당한 스트레스는 몸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디스크 방어도 하고 있으니. 잠깐이라도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일단 배에 힘부터 줘야 한다. 힘이 들어갔으면 척추가 눌리지 않게 해야 된다. 척추 사이사이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마시멜로 같은 말랑말랑한 디스크를 갖지 못했으니. 달릴 때 생기는 충격에 약하다. 척추와 척추 사이의 충격을 흡수할 수 없는 좀 불쌍한 디스크이다. 기침하다가 방심하면 살 떨리는 허리 통증에 눈물을 흘리는 가여운 디스크이다. 왜 이리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지. 그래, 악동뮤지션이 10년 전에 다리 꼬지 마 노래를 불렀을 때. 웃지만 말고. 말 들었어야 했다. 다리 꼬지 마 다 다리 꼬지 마. -골반 나가. 다리 꼬지 마 다 다리 꼬지 마. -척추 나가. 다리 꼬지 마 다 다리 꼬지 마. -디스크다. 망했다.




이미 망했지만. 더 망할 수는 없다. 배에 힘이 빠지기 전에 복압을 유지하면서 척추를 곧게 펴야 한다. 성장판 닫힌 지 오래되었지만. 자기 암시도 해야 한다. 누가 머리를 잡아당긴다. 키가 커진다. 참 복잡스럽다. 그래도 중요한 일이다. 왜? 디스크 환자이니깐.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니 달려볼까. 몸은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볍게. 혹시 모르니 팔하나는 허리를 받치고, 다른 팔은 앞뒤로 움직이며. 호흡에 집중하며 달려본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끝. 오, 5초나 뛰었다. 잘했다. 잘했어. 허리에 통증이 오기 전에 멈췄다. 좋아. 다음에는 10초를 달려보겠어. 몇 개월 전에는 누워만 있었는데 5초나 뛰다니. 심장이 빨리 뛰고 있다. 거친 숨소리는 없지만 기쁨에 들뜬 심장이다.




5초가 10초가 되었다. 10초는 15초로 바뀌었다. 그리고… 더 이상 달리지 않았다. 아파서? 아니다. 달리던 사람이 아니라서다. 땀을 흘리며 달려본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꼬맹이였을 때. 나 잡아봐라를 외치며 뛰었던 기억은 있다. 마음속에서만 땀을 쭉쭉 빼며 달리고 있을 뿐이다. 현실 속의 다리는 속도를 즐기려 하지 않는다. 맞다. 러닝은 나와 친하지 않다. 디스크 눈치가 보인다. 무릎 통증 때문에 달리는 게 쉽지 않다고 핑계를 찾아보지만. 속지 않는다. 이제 보니 눈치가 빠른 디스크다. 기다려봐. 유산소 운동을 찾아볼게. 줄넘기는 무릎과 디스크 때문에 힘들다. 수영은 너무 멀다. 헬스장은 뛸 수 없으니. 패스다. 역시 쉽지 않다. 우선 걷기는 하고 있으니. 천천히 찾아볼게. 기다려보렴.





어, 왔다. 유산소 운동의 기회가. 다니던 요가센터에 줌바가 생겼다. 아직 회원권 날짜가 남았으니. 고민할 이유도 없다. 일단 해보고 선택해 보면 된다. 힘들면 남은 기간 동안 요가를 하면 된다. 10월 첫 주. 첫 줌바 수업을 했다. 달리기는 15초가 끝이었는데. 세상에나 50분 줌바수업은 끝까지 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었다. 한 곡이 끝나면 바로 다른 곡이 나왔다. 줌바는 원래 이렇게 쉼 없이 하는 운동인 건가요. 숨이 차올랐다. 심장이 빨라졌다. 땀이 났다. 디스크로 허리의 유연함을 잃었지만. 동작을 완벽하게 따라 하지는 못하지만. 괜찮았다. 할 수 있는 만큼 버벅거리더라도 따라 했다. 줌바라는 춤과는 먼 율동지만.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난시로 거울에 비친 몸이 흐릿해 보여서 얼굴에 철판을 깔기도 좋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물체가 흐릿하니 좋은 점도 있구나. 줌바 같은 움직임이 가능해지면 렌즈를 사야겠다. 아니다, 줌바 같은 움직임에 몸무게가 3kg이 빠지면 사야겠다. 맑은 눈으로 충격을 받고 싶지는 않다. 흐릿한 세상에 음악과 숨소리만 있으니. 줌바 뭐 할만하네. 훗, 자신감이 상승한다.


줌바는 역시 화려한 조명이 필요해요.~


벌써 5번의 줌바 수업을 들었다. 언제나 50분 수업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아, 물론 마지막 10분에 항상 고비가 오지만 말이다. 유산소 운동을 위해 줌바를 시작했는데.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어깨와 승모근의 가벼움이다. 너무 시원하다. 돌덩이가 올라간 상태로 줌바를 시작하는데. 어찌나 팔을 계속 움직이는지. 혈액순환이 완전 잘 되나 보다. 어깨 관절이 기름칠을 한 것처럼 부드러워진다. 등의 시원함은 덤으로 따라온다. 팡. 팡팡. 쿵쿵 쿵쿵쿵. 박자에 맞춰 팔을 움직이다 보면. 저절로 입이 터진다. 와, 어깨 시원해. 살겠네. 격하게 팔짝거리며 뛰거나, 허리를 많이 움직이는 동작도 거의 없고. 있더라도 제자리걸음이나, 살짝만 움직이면 된다. 허리 상태를 말씀드렸더니. 가능한 범위에서 무리하지 말고 움직이라고 하셨기에. 부담 없이 혼자 조용히 흔들면서 즐기고 있다.




또, 골반이 시원해진다. 골반 돌리는 동작이 있는데. 로봇 골반처럼 뻣뻣하게 움직였었는데. 돌리고 돌리고. 또 반대로 돌리고 돌리고. 무지하게 돌려대니. 골반 주변 근육이 풀리면서 이제 사람 골반으로 탈피를 하고 있다. 줌바 선생님은 다 아시나 보다. 어디 어디가 막혀있는지. 어떤 동작을 해야 막힌 부분에 기름칠이 되고, 풀리는지 말이다. 줌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상쾌하다. 마음만? 아니다. 몸과 마음 모두 다. 몸무게가 많이 줄지 않아도 골반과 고관절이 편안해질 수만 있다면. 어깨가 가벼워져서 날아갈 수만 있다면. 저 계속 줌바하고 싶어요. 그래, 이 지긋지긋한 통증이 풀릴 수 있다면. 무조건 해야겠다. 줌바 3개월 회원권을 신청합니다.




올해 3월. 봄이 오자. 디스크도 같이 왔었다. 정말 잠깐이지만. 이렇게 누워만 있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각나. 바로 정신 차리고 디스크 약을 챙겨 먹었다.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 따라 했었다. 걷고, 또 걸었다. 다행이다. 8개월 전의 내가 뭐든 해줘서. 덕분에 지금은 1시간 걷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욕망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줌바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허리 통증이 남아 있지만. 아직 달리기를 땀이 나도록 뛰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4개월이 지나면 퇴행성 디스크 진단을 받은 지 1년이 된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게. 덕분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고마워. 뭐든 해줘서.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 그루브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풋.~^^

겨울이 되기 전에
30초 달리기
연습을 해보려고요.



4개월 뒤에 내가 나에게 들을 말. 쌩큐^^~~

사진 출처 : 내 폰 갤러리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