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니 엄마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줄어들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자연히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감사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자유가 왔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온종일 아이의 생활에 맞춰 신경을 쓰고 챙겨주는 삶을 10년 이상 하다 보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일하는 시간을 늘렸다. 최소한의 시간만 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삶에서 나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늘렸다. 일하는 사람. 이 말이 내 등을 피게 만들었다. 돈 버는 여자. 이 위치가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다니. 소홀해진 집안일이 보이지만 쿨해진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집안일은 계속 신경 쓰면서 하고 있고, 아이의 생활도 큰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 설거지가 조금 쌓여도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가 산을 이루어 결국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어도 괜찮았다. 난 일하는 사람이니깐.
그렇게 조금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무거운 돌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정신이 없는 건지. 엄마이고 아내인 건 맞지만 그게 다는 아니잖아.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마음속 말이 온몸을 돌아다녔다. 몸과 정신이 모두 피곤한 날. 집안일이 쌓이고 쌓이다 더는 손을 놓을 수 없는 그 순간. 아이는 자고, 남편은 방에 들어가 본인 일만 할 때.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짜증, 화남, 억울함이 몰려왔다. 밤 11시가 넘어가면 한 숨만 계속 나왔다. 하지만 마음에 가득 찬 불편한 감정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소심한 심장은 제대로 쿵쾅거리지도 못한다. 시끄러워지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 이런 비겁한 심장. 결국 불만 가득한 입을 다물게 했다. 피가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입만 다물었을 뿐 내게서 나오는 분위기는 무음의 경고를 하고 있었다. 얼굴은 굳어갔고 말은 까칠했다. 곧 후회할 말들이 아이에게 날아가 결국 눈물을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곤 자책, 자책, 자책.
남편과 감정싸움을 자주했다.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최소한의 대화, 아니 한마디 말만 했다. 무미건조한 말이다. 서로의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보고하는 말은 다시 상처로 돌아왔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는 이미 한 편의 이혼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다. 상상력은 강한가 보다. 어느새 몇 개월 뒤에 이혼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확정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고민을 한다. 한 달 생활비는 얼마가 들지. 일을 하고 있을 때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아이에게 어떻게 이해시킬지. 학교와 집은 옮겨야 하는지. 옮긴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평소에는 무계획과 가깝게 살던 내가 세세한 것들을 혼자 짜고 있다. 이렇게 혼자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땅굴을 파고 있다. 깊은 땅굴에 들어가 버린 나는. 외로운데 울지도 못하는 혼자가 되어 버린다. 결국 외롭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 답답한 어두운 곳을 빠져나갈 방법 말이다. 가장 쉽고, 빠르고,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드라마 보기. 친구와 드라마를 보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금 내가 사는 현실은 힘이 드니 꿈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허전함을 채우는 것이다고 말했다. 친구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최근에 주로 보는 것은 로맨스다. 가끔 판타지 무협도 본다. 정말 정. 주. 행. 을 한다. 새벽을 지나 아침해를 보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정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멍해질 때도 있었다. 어두운 거실에 스탠드를 하나 켜놓고 빛이 새어나갈까 봐 사방을 그림책으로 막는 정성을 들이며 한 참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뒤척이다가 부스스 눈을 뜰 때가 있다. 아이가 깨면 감추고 싶은 마음에 안 본 척, 화장실 때문에 방금 깬 척을 한다. 휴, 왜 하필 지금 깨고 그러니. 그니깐 자기 전에 화장실 갔다 오라고 했잖니. 딸아. 흐름이 끊겨 날카로워진 입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 다시 아이가 잠들면 화면을 켜고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새벽 5시도 아니네. 검지 손가락을 잠깐 째려보지만 그게 다다. 뻑뻑한 눈은 원위치를 찾아간다. 몸이 피곤하면 3일~5일 정도 쉬기도 했지만, 꽤 오랫동안 이 그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좀 적당히 보면 좋을 텐데 마음이 힘드니 집착도 심해졌다. 이런 회피형 집착은 소모성이다. 볼 때는 괜찮은데 보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들인 시간 대비 아웃풋의 질이 정말 별로다. 보통은 좋아지기 시작한 배우. 조금은 괜찮은 스토리와 영상미. 삶에 도움이 되는 약간의 가치관. 순간순간 애정씬이 주는 즐거움과 설렘이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딱 여기에서 멈춘다. 소비만 한다.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비가 나쁘다기보다는 깊이 없는 즐거움 때문에 허전했다. 그래도 지금은 몇 년 전보다 나아졌다. 정주행을 하다가 아침해까지 보진 않는다. 가끔 화장실 때문에 일어난 아이가 뭐하냐고 물어볼 때도 있지만 적어도 안 본 척, 방금 깬 척은 하지 않는다. 물론 눈 감고 야옹할 때도 있다. 그땐 ‘그래, 나도 쉬어야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조용히 아이를 다시 재우러 가기도 한다. 남편과는 평범한 부부가 되기도 한다. 그 어렵다는 평. 범. 한. 부부 말이다. 일도 조금은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 마음의 여유공간이 생겨 까칠한 말이 조금씩 들어가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나쁘지 않은 생활이다. 하지만 외로움,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조금은 정제된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말이다. 볼게 별로 없어서 고민하다 나중에 시간 되면 봐야겠다고 생각만 하던 드라마였다. 메인 이미지가 로맨스적이고, 차분한 드라마다. 바로 ‘원래아흔애니’이다. 생각보다 스토리 전개도 좋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내용도 좋았다. 그렇게 막 빠져들고 있었다. 물론 딱 적당한 깊이만큼만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남자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 영상. 그 옆모습. 그 보이스. 그 눈 빛. 그 노래. 빠지는 건 한 순간이더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덕질이 시작되었다. 사춘기 때도 하지 않던 덕질이다. 덕질의 최고 단계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덕질. 한 번 해봐야겠다. 그래, 그 깊이라는 것을 만들어보자. 발목이든 무릎이든 모라도 한 번 담가보자. 외롭다고 한 숨만 쉬는 것보다는 차라리 몰입 덕질이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나라도 나에게 관심을 주기로 했다. 바로 덕질하는 40대 여성이 되었다. 마음에 든다. 어느 40대 여성의 덕질하는 하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