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제 21장 - 금언
나는 책을 읽을 때, 내 마음을 울리는 한 마디 혹은 한 단락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독서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주 오래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수사학을 읽었다.
솔직히 책 제목만 들어도 따분함이 느껴지는 건 인정한다.
나도 예전엔 철학자의 이름만 나오면 따분한 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한창 동양, 서양 철학 책을 읽다보니
이런 책들이 그렇게 인생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신기한 점은 2400년 전의 책에 담겨 있는 지혜가
현시대의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지식을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소개해드리고 싶은 챕터가 있다. 바로 "금언(Maxim)"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가 연설을 하거나 발표를 할 때 유용하게 쓰는 패턴이 바로 명언을 활용하는 법이다.
오늘 나는 조조영화로 2DIMAX로 "덩케르크"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이 명화의 마지막 장면은
윈스턴 처칠 수상의 명언으로 마무리된다.
명언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리더에게 강력한 리더십을 부여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또한 수사학 책 본문 중에서 예시로 이런 표현이 나온다.
세상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돈의 노예가 아니면 필연의 노예이니까.
일상 생활을 하며 저런 표현을 쓸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여러분이 작가라서 멋진 글을 써야한다거나
중요한 발표를 해야하는 시점에 저런 표현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상황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금언은 발표를 돋보이게 만들고, 발표의 설득력을 한 층 높이 이끌어준다.
그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금언(Maxim)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본문 출처 - 제 21장 금언, 수사학/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저 / 천병희 역, 숲 출판사
금언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기회에 누가 연설에서 금언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금언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나면 명백해질 것이다. 금언은 하나의 선언이다. 그러나 이를테면 이피크라테스의 성격과 같은 특정한 사실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일반적 선언이다. 하지만 금언은 이를테면 '직선은 곡선의 반대이다' 와 같은 모든 경우가 아니라, 인간 행위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피할 것이냐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선언이다. 생략삼단논법은 그런 것들을 다루는 삼단논법이므로 금언은 추론이 배제된 생략삼단논법의 전제 또는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자식들을
너무 영리하게 가르쳐서는 안 돼요.
이것은 금언이다. 여기에 왜 그런지 이유를 덧붙이면 전체는 생략 삼단논법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태만하다는 비난을 듣는 것 말고도
시민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사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모든 점에서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중 것은 금언이지만 다음 시행과 결합하면 생략삼단논법이 된다.
사람은 돈의 노예가 아니면 필연의 노예이니까.
금언이 우리가 정의한 그런 것이라면 금언에는 네 종류가 있을 수 있다. 금언에는 보완하는 말이 따라올 수도 있고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언이 역설적이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을 말할 때는 증명이 필요하고 역설적이지 않은 것을 말할 때는 증명이 필요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표명된 견해가 다음 경우처럼 이미 알려진 진리이거나
우리가 보기에 인간에게 최고의 축복은 건강인 것 같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니까), 또는 다음처럼 견해가 표명되자마자 생각하는 사람이면 대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하게 되지요.
보완하는 말이 따라오는 금언 중에 어떤 것들은 다음처럼 생략삼단논법의 일부이고,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다른 것들은 생략삼단논법의 성격을 갖지만 생략삼단논법의 부분은 아니다. 이 후자가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 그런 금언들에는 표명된 견해를 설명하는 이유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불멸의 분노를 키우지 말라.
'불멸의 분노를 키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금언이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라고 덧붙인 것은 이유를 말해준다. 다음도 마찬가지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는 유한한 생각을 품어야지
불멸의 생각을 품어서는 안된다.
이상으로 금언의 종류가 얼마나 많고 각 종류에는 어떤 주제에 사용하는 것이 적합한지 분명해졌다. 역설적이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보완하는 말이 필요하다. 그럴 경우 보완하는 말을 앞세우고 결론을 금언으로 사용하거나(이를테면 누군가 "나로서는 시기 대상이 되는 것도 게으른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아이들은 교육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금언을 먼저 말하고 보완하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는 않지만 명확하지 않은 발언에 이유를 덧붙일 때는 되도록 간명해야 한다. 그런 경우들에는 라코니케식 경구나 수수께끼 같은 발언이 적합하다. 예를 들어 스테시코로스는 로크리스인들에게 매미들이 땅에서 울지 않게 하려면 교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금언은 나이 지긋한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말할 때 사용하면 적합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그렇지만 젊은 사람이 금언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금언을 사용해 말하는 것은 어리석고 버릇없는 짓이다. 시골 사람들이 특히 금언을 지어내고 과시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이를 충분히 입증해준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일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평이나 과장에 가장 적합한데, 첫머리에서나 증명을 끝낸 뒤에 특히 그렇다. 목적에 부합하면 진부하고 상투적인 금언도 사용해야 한다. 그런 금언은 상투적이기에 누구나 동의하고 그래서 진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제물을 바쳐 전조를 알아보기 전에 위험을 무릅쓰도록 자기 병사들을 격려할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최선의 새점은 오직 하나뿐,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오.
그리고 자기 병사들이 수적으로 열세일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전쟁의 신은 공평하오.
그리고 적군의 죄 없는 자녀들을 죽이라고 명령할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아버지는 죽이고 그 자식들을 살려둔다는 것은 바보짓이오.
또한 몇몇 속담은 금언이기도 하다. 예컨대 "앗티케인 이웃"이라는 속담이 그렇다. 또한 "너 자신을 알라" "어떤 것도 지나치지 않게!"와 같은 명언과 어긋나더라도 누군가의 성격을 더 잘 드러낼 것 같거나 감동적으로 표현되었다면 금언을 사용해야 한다. 화가 난 사람이 나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전자의 경우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가 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무튼 이 사람이 자신을 알았다면 결코 장군직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의 성격이 더 잘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 말마따나 우리 친구를 미래의 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 적을 미래의 친구로 대해야 하오." 도덕적 의도도 말로 표현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그 이유를 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친구를 사람들이 말하듯 대해서는 안 되고, 영원한 친구가 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다르게 사랑하는 것은 배신을 의미하니까."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이 들지 않소. 진정한 친구라면 영원히 사랑할 것처럼 사랑해야 하니까."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어떤 것도 지나치지 않게!'라는 금언이 마음에 들지 않소. 사악한 자는 아무리 미워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오."
금언은 연설에 큰 도움이 된다. 그것은 첫째, 청중은 우둔해 자신이 특정한 경우에 갖는 의견을 누가 보편적인 진리로 표현하면 듣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 말이 무슨 뜻이며, 금언을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지 밝혀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금언을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지 밝혀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금언은 보편적 단언이고, 청중은 자신이 특정한 경우에 사실이라고 믿던 의견이 일반화되면 듣고 좋아한다. 예를 들어 고약한 이웃과 자식을 둔 사람은 "세상에 이웃보다 더 고약한 것은 없다" 또는 "세상에서 자식 기르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연설가는 청중이 어떤 주제를 두고 이미 의견을 지니는지, 그 의견은 어떤 것인지 알아내어 그것을 보편적 진리로 표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금언 사용의 이점 중 하나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다른 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금언 사용이 연설에 도덕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목적이 뚜렷한 모든 연설은 도덕적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금언의 효과이다. 금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원칙을 보편적 형태로 선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언이 훌륭하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도 훌륭해 보이게 만든다.
금언의 성격과 종류, 사용법과 이점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