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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송호연 May 10. 2018

왕도와 패도

삼국지 유비가 따른 길은 왕도(王道)인가 패도(覇道)인가?

한비자
논어


한비자,

논어,

맹자


3가지 책을 읽었을 때, 한비자의 법가 사상과 공자의 유가 사상은 같은 동양 고전인데 너무나도 다른 철학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3가지 책을 읽고 난 후 최근에 삼국지를 읽었는데, 유비와 제갈량, 그리고 조조는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한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왕도(王道)


조선시대에 우리의 조상들은 유교의 철학을 중심에 내세우며, '인의예지'를 따랐다. 유교에서의 이상적인 통치 체제는 바로 '덕치(德治)'이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따르는 사람들이 감화되어 스스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정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라고 생각했고, 이를 '왕도(王道)'라고 했다. 왕도는 유가 사상과 닿아 있다.


패도(覇道)


패도(覇道)는 이와 반대로 힘을 인간의 권력의 원천으로 삼는다. 왕도가 덕을 가진 이가 어짐으로 따르는 이들을 감화시킨다는 발상이라면, 패도는 힘을 가진 이가 권력을 얻고 그 권력으로 사람들을 복종시킨다고 보는 발상이다. 패도는 법가 사상과 닿아있다.


진시황은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받아들여, 법치주의 국가를 강하게 이루어내었다. 사람들은 진나라가 법가 사상을 도입함으로 치리(治理)의 절정을 이루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한비자의 스승이기도 한 순자는 지난 20세기 중반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법가와 유가 가운데 어느 학파에 속하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됐다. 모택동의 부인인 강청을 비롯한 사인방은 순자를 법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주장에 불과했다.


[사기] 등의 사서에는 나오지 않으나 [순자] [강국]에는 순자가 진소양왕 밑에서 재상을 하고 있던 범수와 나눈 얘기가 실려 있다. [강국]의 기록에 따르면 범수는 진나라를 처음 찾아온 순자와 만나 이 같이 물었다.

"진나라로 들어와 무엇을 보았소?"


순자가 대답했다.

"견고한 요새는 험하고, 형세는 유리하고, 산림과 계곡은 아름답고, 천연자원의 이점이 많으니 이것이 지형의 우월함입니다. 도시로 들어가 풍속을 살펴보니 백성들은 질박하고, 음악은 저속하지 않고, 복색은 방정맞지 않고, 관원을 매우 두려워하면서 순정하고 있으니 옛날 백성과 같습니다. 사대부들을 보니 모두 집 문을 나와서는 곧장 관청으로 가고, 공문을 나와서는 곧장 귀가하여 사사로운 일을 행하는 적이 없습니다."


무리지어 파당을 결성하지 않고, 뛰어나게 일처리에 밝고 공정하니 옛날의 사대부와 같습니다. 조정을 보니 퇴근할 때까지 공무를 모두 처리해 백사가 적체되지 않고, 편안해 하는 모습이 마치 아무 할 일이 없는 듯했으니 이는 옛날의 조정과 같습니다. 진나라가 4대에 걸쳐 승리를 거둔 것은 요행이 아니고 일정한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는 치리의 최고경지에 이른 셈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렇기는 하나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진나라는 이 몇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나 아직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습니다."


범수가 물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오?"


순자가 대답했다.

"진나라에 유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치를 완전하게 행하면 왕자, 불완전하게 행하면 패자, 하나도 행하지 못하면 망자가 된다는 취지의 수이왕, 박이패, 무일이망을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진나라의 결점입니다."


덕치를 기초로 한 왕도를 가장 바람직하게 보면서 부득이할 때 엄한 법과 무력에 기초한 패도를 수용하는 순자의 '선왕후패' 논지가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

제갈량은 한비자가 유가의 왕도를 배척한 것과 달리, 유가의 왕도를 전면에 내세울 것을 '선왕후패'를 역설한 순자의 입장과 일치한다. 순자의 진정한 사상적 제자는 한비자가 아니라 제갈량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편의16책]에 나오는 일련의 치국방략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 185p, 제갈량처럼 앞서가라, 신동준



유비는 전면에 왕도를 내세웠다. 하지만, 모든 일을 덕으로서만 행하지는 않았고 부득이할 때는 엄한 법과 무력에 기초한 패도를 내세운 적도 있었다. 즉, 제갈량과 유비가 따른 사상은 유가이며 법가이며 동시에 병가였다. 


제갈량과 유비는 선왕후패, 앞으로는 왕도를 내세우고, 패도를 병행했다. 


그 뒤로도, 당태종과 청대의 강희제 등은 조조와 제갈량을 따라 겉으로는 유학을 내세우지만, 안으로는 법으로 다스리는 '외유내법'의 통치기조를 유지했다. 왕도와 패도, 유가와 법가, 두 가지 사상이 서로 반대되는 것 같지만, 인의와 공정한 법이 같이 움직일 때 진정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명군의 다스림은 백성들이 걱정하는 바를 아는 데 힘쓴다.
조복지리(뇌물을 밝히는 아전)와
소국지신(지방의 토호와 유착한 지방관원)을
다스리는 게 그것이다.

- [편의16책] [치인], 제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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