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신사 시대, '나'로 돌아가는 시간

《모모》에게 배우는 삶의 나침반

by Itz토퍼

저에겐 한 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명절이나 생일 같은 날 제자와 지인들에게서 오는 메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때만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별명이죠. 그 별명의 근원은 강의나 상담 때마다 들려주던 한 권의 책에 대한 줄거리 때문입니다.


고교 시절, 입시 스트레스와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마음의 위로가 되어준 책이 있었습니다. 물론 첫사랑과도 항상 읽고 이야기를 나누던,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Michael Ende)의 소설 《모모(Momo)》입니다.

그 책은 저의 내면에 ‘시간’과 ‘나다움’에 대한 질문을 가장 깊이 있게 심어준 작품입니다.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


《모모》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진정한 나(True Self)’의 가치를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모모는 폐허 속에 사는 작은 소녀로, 남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능력을 지녔죠. 사람들은 그녀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잊었던 기쁨과 창의력을 되찾습니다. 하지만 회색 신사들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저축하세요.”


이발사, 노동자, 주부들은 꿈, 놀이, 예술, 대화처럼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하나둘 버리게 되죠. 그러자 이상하게도, 시간을 저축했는데도 삶은 더 팍팍하고 공허해집니다.

왜일까요? 그 ‘낭비’ 속에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순수한 시간, 즉 나다움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색 신사들은 훔친 시간을 말려 만든 시가를 피웁니다. 그 연기는 바로 사람들의 영혼이 타는 것이었죠. 그들의 세계는 오늘의 우리 사회처럼 차갑고 효율적이며, 인간의 생명력을 서서히 삼켜갑니다.


모모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와 함께 시간의 근원, ‘호라 박사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모든 인간의 시간이 ‘시간의 꽃’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모모의 임무는 바로 인류의 시간을, 곧 인간의 본질을 되찾는 일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은 삶이고,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모모의 시간’


오늘의 우리 역시 회색 신사들의 세상 속을 살아갑니다.

배우고 또 배우며 시험을 치르고, 직장에 들어가면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립니다. 태어나자마자 모두가 완주해야 하는 무한 마라톤대회에 자동 등록된 듯, ‘쉬어도 되는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채 달리고 있죠.


어릴 땐 성적표가, 대학에선 스펙이, 사회에서는 성과가 나를 대신합니다. SNS 속에서도 ‘좋은 사람’, ‘성공한 사람’, 최소한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따르죠. 사회는 우리를 ‘표준화된 인간’으로 길들이는 거대한 공장처럼 변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서면 공허하고 허전하죠.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삶의 리모컨이 남의 손에 넘어간 듯, 내 의지로 채널 하나 돌리지 못하는 기분.

그때 우리는 이미 ‘시간’을, 그리고 ‘나다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친구의 고백 – 얻은 만큼 잃은 것들


대학 시절 하숙집에서 만난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의대를 졸업하고, 25년간 외과 의사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병원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 남긴 메일엔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친구야, 사람들은 철학적인 질문을 하면 꼰대 같다고 하지만, 지금 내가 그 꼴이 되었다네. 어느 날부터 수술실에서 가운을 벗고 거울을 보니, 내 앞엔 사람이 아니라 수술 전용 로봇이 보이더라.”


그는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정작 자신의 시간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부러워했지만, 그는 말했죠. “나는 명성을 얻고,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처럼 살았어.”


그래서 그는 탈출했습니다. 그 공장에서, 그 시간의 공포로부터.

그리고 우리에게 조용히 질문을 남겼습니다.


“너는 너의 인생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고 있니?”


‘나 사용 설명서’를 다시 써야 할 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나 사용 설명서’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에너지를 얻고, 어떤 관계에서 소모되는지, 내 마음의 엔진은 어떤 에너지로 돌아가는지가 그 안에 쓰여 있죠.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속도에 쫓겨 그 설명서를 거의 읽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혹은 너무 오래된 버전이라 유효기간이 지나 있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 사용 설명서를 새로 써야 할 때입니다. 남이 붙여준 꼬리표가 아니라, 나의 성격과 기질(Character),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말이죠.


스스로를 다시 이해하는 순간, 사회가 덧씌운 ‘나’와의 경계가 생깁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시간을 다시 설계할 수 있겠죠. 오래된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길을 가리키면 업데이트가 필요하듯, 우리 삶도 ‘나다움’이라는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지금이 아닐까요?



시간의 주인은 ‘나다움’


세상의 기준에 맞추다 잃는 것은 단지 여유나 휴식이 아니겠죠. 그건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깊이입니다.


외부의 인정에 기대어 사는 삶은 내 삶의 운전대를 타인에게 넘기는 일입니다. 남의 시선이 방향을 정하고, 남의 평가가 속도를 조절하죠. 그러다 세상이 멈추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표류자가 됩니다.


외부의 성취는 휘발성이 강합니다. 가면을 쓰고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한정돼 있고, 그 에너지가 바닥나면 내면의 엔진, 즉 ‘시간의 감각’이 고장 나버리겠죠. 그때 찾아오는 공허함은 성공의 후유증, 즉 잃어버린 시간의 고통입니다.


‘나다운 삶’을 찾는 일은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닙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회복의 기술이자, 시간의 주권을 되찾는 일이랍니다.


글을 쓰는 사람을 어떤가요?

타인을 의식해 쓰는 글과 자신에게 솔직한 글은 완전히 다릅니다. 진정한 글쓰기는 자신을 바로 세우는 시간의 행위이기 때문이죠. 나다움의 회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세우는 시간의 연습이죠.


외부의 기준은 언제든 변합니다. 하지만 ‘나다운 삶’은 어떤 거센 바람이 불어도 뿌리째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이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남이 시키는 무엇(What)이 아니라, 내가 믿는 이유(Why)로 사는 삶. 그건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 길이며, 세상 어디에도 복제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의 궤도입니다.


바로 제가 바닷가 작은 집에서 '나'를 만나 듣게 된 이야기처럼.

06화 침묵하던 아이, 마음을 여는 어른이 되기까지


시간을 되찾는 용기


진정한 행복은 남이 정한 궤도를 따라 얻는 보상이 아닙니다. 그건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이 어떤 연료로 움직이는지를 이해할 때 찾아옵니다.


외부의 기준에 맞춘 행복은 달콤하지만 금세 녹아버립니다. 그러나 나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인격을 존중한 선택은 오래도록 그 단단함을 굳혀갑니다. 그건 나를 채우는 만족이지, 남에게 보여주는 성과가 아니니까요.


한 조사에 따르면, 부족해서 자신을 비관하는 사람보다 성취를 이룬 후 공허함에 빠지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얻는 동안, 너무 많은 ‘자기 시간’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처럼.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무수한 ‘기회’를 제시하더라도, 그 기회가 ‘나의 시간’을 빼앗는다면 인어공주가 잃은 목소리와 다르지 않겠죠.


이제는 남이 정한 코스를 달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안의 나침반을 믿고,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 그 용기가 바로 시간을 되찾는 첫걸음이며, 우리 자신을 다시 ‘나’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입니다.


없는 것부터 찾아야겠죠. 내향이든, 외향이든, 숫기든, 용기든, 혹은 잃어버린 ‘나’ 자신이든. 그걸 찾아 세상 위에 다시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모모를 만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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