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 속에서 다시 나를 만난다

조르주 뷔퐁의 문체론이 알려주는 글쓰기의 힘

by Itz토퍼

저는 간혹 블로그 이웃이나 브런치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질문을 빼지 않으시더군요.

“실례지만,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먼저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아마 글 속에 깃든 '토퍼'라는 인물을 아직 온전히 만나지 못했거나, 제 글을 최근에 한두 번만 접하신 분들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제 글 속에는 늘 ‘토퍼’라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글무리’마다 주인공 혹은 조연으로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 글을 꾸준히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이 인물의 삶을 조금씩.

아니, 어쩌면 아주 많이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조금 더 넓게 설명드리려 합니다.


은퇴 후, 제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아마 서재의 책상이나 카페의 탁자 앞일 겁니다. 물론 침대도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렇지는 않더군요. 잠잘 때 외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으니까요.

아무튼 책상 앞에서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은 ‘글쓰기’와 ‘상담’에 관련된 일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지 않으면, 일기를 쓰고, 자료를 정리하고, 사진을 보정하거나 메모를 다듬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보배단지의 과제를 봐주는 일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말이 요즘 더 깊이 와닿습니다.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Le style, c’est l’homme mê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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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고 무게감이 있는 문장은 18세기 프랑스의 박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 백작이 남긴 말입니다.

이름부터 좀 길지요? 뷔퐁은 1707년에 태어나 1788년에 세상을 떠났고, 방대한 자연과학 저서 ‘박물지(Histoire Naturelle)’를 통해 과학과 철학의 세계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가장 강렬한 한마디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이 아닌 ‘글쓰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1753년, 프랑스 아카데미에 입회하며 그는 ‘문체론(Discours sur le style)’이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이 말을 남겼죠.

뷔퐁이 말한 ‘문체’는 단순히 글을 멋지게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 사고방식이 자연스레 스며든 삶의 흐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문체’가 사람의 사유와 개성이 드러나는 방식이라면, ‘글’은 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 많이 와닿지 않으세요?”


저는 오랜 시간 글을 쓰고 또 읽으면서 정말 그렇다고 느낍니다.

누군가의 글을 천천히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말투나 생각의 흐름, 심지어는 특유의 기질까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글에서 느껴지는 게 아닌, 그 사람만의 향기 같은 것이지요.


뷔퐁은 또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문체가 어수선하거나 난해하면 그 글의 가치는 반감된다고요. 반대로, 내용이 평범하더라도 문장이 또렷하고 개성이 있다면 그 글은 독자의 마음속에 훨씬 깊이 파고든다고 했습니다.

즉, 어렵게 포장하지 말고 간결하고 질서 있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는 겁니다.


혹시 글을 읽다가 “이 사람은 문학을 하고 있군.” 혹은 “이 사람은 글을 쓰고 있어.”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

묘하게 드러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문장을 화려하게 뽑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얼마나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글쓰기,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습관


저는 중학교 때 속독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죠. 그건 제게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걸요.

책을 빨리 읽는 것도 좋지만, 저는 중요한 문장에는 밑줄을 긋고 옆에 짧은 메모를 달며 천천히 읽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야 책의 글무리들이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납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책은 정독이라야 깊게 스며드니까요.

느리게 읽는 습관이 자연스레 느리게 쓰는 습관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종이책이든 온라인 글이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복사해 문서 파일에 정리하고, 틈날 때마다 다시 꺼내 읽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문장들이 어느새 제 삶의 재료가 되었고, 은퇴한 지금은 글쓰기 자체가 하루의 루틴이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은 조류독감 확진을 받고 고열과 기침 속에서 이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매일 일기를 쓰고, 예전 강의 노트나 상담 기록을 정리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건 이제 제 일상의 일부이자, 마음을 다스리는 루틴이 되었으니까요.


예전에 한 작가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작가님은 글감이 참 많으세요.”

그래서 노트북 속 ‘글무리’를 모아보니, 그 분량이 꽤 거대한 '기억의 숲'이나 '생각의 저장고'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만큼 제 글무리는 저보다 저를 더 잘 압니다.


그래서일까요,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다 보면 어떤 분인지 알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맞는 말씀입니다.

앞서 메일을 보내주신 분들의 질문에 제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저만 그런 건 아닙니다.

모든 글에는 그 사람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그래서 오늘도 글을 씁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글무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운동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면, 글쓰기는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습관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면 머릿속이 정리됩니다.

뒤죽박죽이던 생각과 감정이 문장 속에서 질서를 찾고, 막연했던 고민이 글로 옮겨지는 순간 그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각은 글로 쓰기 전까지는 나조차 몰랐던 마음이기도 하지요.

특히 감정은 더욱 그렇습니다. 말로는 도무지 풀리지 않던 뭉치들이 글로는 의외로 술술 흘러나올 때가 있습니다. 슬픔, 분노, 설렘, 외로움 같은 감정들이 글 속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글이 말없이 다독여주는 경험, 참 좋지 않나요?


또 글을 쓰다 보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씩 더 선명해집니다.

어떤 가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마음이 흔들리는지, 글이 그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런 자기 이해는 삶을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게다가 글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내 생각을 글로 세상에 전하고, 누군가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표현하는 힘은 곧 듣는 힘과도 연결됩니다.

글은 혼잣말이 아니라, 또 다른 대화의 시작이 됩니다.

무엇보다 저는 글쓰기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한다고 믿습니다. 평범한 하루도 글로 쓰면 특별해지고, 잊고 있던 장면이 문장으로 되살아납니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들이 의외의 통찰로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글은 기록이 됩니다.

사라졌을 뻔한 감정, 흘러가버릴 순간들을 글이 붙잡아줍니다. 기분 좋았던 날, 유난히 속상했던 일, 의미 없이 지나간 하루까지. 그렇게 쌓인 글들은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걸고,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창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그저 글을 쓰는 그 과정이 ‘나’를 더 잘 알게 해 주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더 깊게 살아가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숨기고 싶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보배단지’가 훗날 제가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할 때, 이 글무리들을 통해 아빠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게 곧 저만의 숨결이자 흔적 아닐까요.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


이 말을 저는 자주 떠올립니다.

글은 곧 마음이고, 마음은 그 사람의 삶입니다.

조용한 한 줄의 문장이,

때로는 누군가의 인생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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