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드는 작업

심리적 장벽을 넘어서는 자기 위안의 메커니즘

by Itz토퍼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엔 까마귀가 불로장생에 좋다는 소문이 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농촌의 할배들부터 밀렵꾼까지 모두 까마귀를 잡으러 다녔죠.

값비싼 약재로 팔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바닷가에 가까운 한 시골 마을, 난초를 캐러 간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종일 산을 헤맨 뒤, 중턱에서 빵과 음료로 요기를 하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벌과 파리의 윙윙거림이 들려왔습니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죽은 지 오래된 꽃사슴 한 마리가 있었죠.

이미 썩어 냄새가 진동했고, 그 위엔 구더기가 바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한 친구가 뜬금없이 말했습니다.


“야! 저 구더기가 보약이래.”

“헛소리 마라. 그게 무슨 보약이야?”

“진짜라니까. 고추장 담글 때도 구더기가 살아야 맛있다잖아. 요즘은 까마귀도 보약인데, 사슴은 더 좋지 않겠냐?”

“저게 사슴이야, 꽃사슴이지.”

“얌마, 꽃사슴도 사슴이야. 젖소는 소가 아니냐?”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다른 친구도 어느새 혹해버렸습니다.

“그래... 하긴, 사슴인데...”

“야, 한 마리씩만 먹어보자. ‘하나, 둘, 셋’ 하고 삼키는 거야.”

“…….”

“하나, 둘, 셋!”


그날 이후 마을에선 ‘원시인간 둘이 구석기시대에서 돌아왔다’는 농담이 돌았습니다.


웃기지만, 이 이야기에는 꽤 흥미로운 인간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합리화할 때, 그것은 단지 핑계를 대는 게 아니라 심리적 장벽을 통과하기 위한 ‘위안의 기술’ 일지도 모릅니다.


‘보약을 거절하냐?’는 말의 마법


“구더기 무섭다고 보약을 거절하냐?”

이 한마디에는 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인지 부조화’의 모든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동시에 모순된 두 생각을 품을 수 없습니다.

하나는 “보약은 몸에 좋다”는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구더기는 역겹다”는 본능이죠.

이 둘이 부딪치면 마음은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둘 중 하나를 바꿔버립니다.


“그래, 역겹긴 해도 몸에 좋은 거잖아.”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하죠.

이게 바로 합리화이고, 어쩌면 가장 정교한 형태의 자기 위안입니다.

불쾌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마음이 만들어내는 ‘합리적 이야기’.

그 순간, 구더기는 혐오의 대상에서 ‘시험대’로 바뀝니다.


‘한 마리씩만 먹자’ – 두려움을 줄이는 법


“한 마리씩만 먹자”는 제안은 얼핏 우스꽝스럽지만, 사실 심리치료에서 말하는 체계적 둔감화와 닮았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그것을 조금씩 마주하는 것입니다.

한 번의 노출이 성공하면, 그 경험은 ‘자기 효능감’을 높여줍니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 짧은 순간의 성공이 자신감을 키우고, 결국 더 큰 두려움까지 넘게 하죠.

우리가 발표를 두려워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망설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게 시도하고, 작게 실패하고, 작게 성공하면서 마음의 문턱을 낮추는 것.

그 반복이 결국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줍니다.


자기 위안, 마음의 안전장치이자 덫


자기 위안은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원초적인 심리적 장치입니다.

넘어졌을 때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행위, 실수 후 “다음엔 잘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그 한마디 속에도 자기 위안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나약함의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상처를 소화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명한 정교한 생존 기술에 가깝습니다.


자기 위안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인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무너뜨리려 할 때, ‘그래도 괜찮아’라는 내면의 한 줄 문장이 방패가 되어줍니다.

실패의 순간에도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게 해 주죠.

즉, 자기 위안은 상처와 시련을 성장의 연료로 바꾸는 정서적 완충 장치입니다.


하지만 이 유용한 방패가 때로는 현실 회피의 도구로 변하기도 합니다.

“괜찮아”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지면, 우리는 괜찮지 않아야 할 일에도 무뎌집니다.

관계의 문제, 일의 실패, 내면의 불안함을 직시하기보다 “다 잘될 거야”라는 말로 덮어버릴 때, 위안은 치유가 아니라 감정의 마취제가 되어버립니다.


자기 위안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그 바탕에 ‘현실 인식’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힘들다”라는 사실을 인정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자기 위안은 비로소 성장의 도구가 됩니다.


우리가 성격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힘은 결국 ‘눈을 돌리지 않는 위안’에서 나옵니다.

그 위안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되, 그 안에서 여전히 자신을 믿는 작은 마음의 불씨입니다.


경계가 무너질 때, 성장의 문이 열린다


두 친구가 ‘원시인간’으로 돌아왔다는 농담은 우습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심리적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언제든 이성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를 긍정적인 면에서 발동시키면, 혐오와 두려움, 불가능과 불편함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 역시 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며 수많은 ‘구더기’를 만납니다.

하기 싫은 일, 불안한 발표, 관계의 불편함.

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보약’이 숨어 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걸림돌은 디딤돌이 됩니다.


성격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거나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심리적 성장은 ‘용기’라는 거창한 말보다,

“그래, 하나만 해보자.”

이렇게 마음을 다독이는 자기 위안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렵지 않아요~ 참 쉽죠?”

“See? That’s not so hard. It’s very easy, isn’t it?”


PIC_20140314_173450_567.jpg
PIC_20140314_173450_491.jpg
“깊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강, 그 강을 건너는 두 가지 길. 당신의 선택은?”




이전 07화나는 글 속에서 다시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