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한 글들을 위한 '꽃단장 리모델링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 쓰기를 좋아하고 즐긴다는 이유만으로 브런치가 저 같은 도전자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붙여준 데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 호칭을 제가 선뜻 사용하기가 조금 두렵습니다. 물론 거부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아주 기뻤고, 뿌듯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름이 지닌 책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지내며 어릴 때부터 꿈꾸던 ‘교수’라는 호칭을 듣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얻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그만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왔죠. 중화권에서는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중국어를 사용할 때는 ‘교수’보다 ‘선생님(老师)’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씁니다. 흔하게 들리는 이름일지라도, 제게 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귀히 여기죠.
예전에 충북 괴산의 깊은 산골에 아주 지긋한 연세의 할아버지 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너무 외진 곳이라 주민도 몇 가구 되지 않고, 교회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오랫동안 목회자가 부재한 채 교회 문이 닫히기 직전이었죠. 그때 이분이 오셨습니다. 그는 교회를 다시 열어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정 기반이 없는 교회였지만, 직접 밭을 갈고 채소를 심어 농사를 지으며 교회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고 자신의 생활비도 해결하였지요.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교인들이 자신을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때 신학을 공부해 전도사 자격까진 얻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목사 안수는 받지 못했습니다. 이후로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은퇴한, 사실상 일반 신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저를 부르시려거든, 그냥 ‘전도사’라고만 해주셔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기억할 때, 저는 호칭의 무게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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