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박자는 없다: 잭 스패로우의 자유 철학

《캐리비안의 해적》 OST에서 찾은 방황의 가치와 자유

by Itz토퍼

어린 시절,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형이 수평선을 가리키며 말했죠.


“저쪽으로 쭉 가면 일본이다.”

“일본만 있나?”

“아이다. 미국도 있고, 아프리카도 있고, 억수로 많다.”


그 너머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수평선 너머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자리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타국이라는 낯선 좌표 위를 떠도는 지금의 삶은, 어쩌면 그 시절 바라보았던 수평선이 남긴 숙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경계 없는 바다 위에 홀로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낯선 하늘 아래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를 떠올립니다.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상대는 무책임하게 발뺌만 했습니다. 통증과 억울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도 없다’는 절망이 엄습해 왔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칠흑 같은 밤길에서 어디에 묵을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헤매던 순간들, 손 하나 잡아 줄 사람 없이 어둠 속에 홀로 선 순간들 역시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면 다시 길 위에 섭니다. 또다시 그 막막함을 향해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것은 “한번 가 보자”는 가벼운 모험심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향해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는 어떤 부름, 그 소리에 응답하는 행위였습니다.


영화《캐리비안의 해적》의 메인 테마 ‘He’s a Pirate’가 시작될 때 가슴이 본능적으로 뛰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죠. 그 음악은 우리 안에 잠든 ‘진정한 자유'를 깨우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미지의 영토를 향한 야성을 자극하는 소리이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한 인물을 만납니다. 잭 스패로우.


그는 단순히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해적이 아닙니다. 그는 기존의 모든 규범과 가치를 가볍게 비웃으며, 자신만의 법칙으로 세상을 항해하는 존재, 즉 니체가 말한 ‘초인(Übermensch)’의 전형 같습니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과정을 세 가지 상징적인 존재로 설명합니다.


그 첫 번째 여정은 ‘낙타’의 단계입니다.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견디며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걷는 낙타처럼, 인간은 누구나 사회가 부여한 관습과 도덕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갑니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불평 없이 인내하며 걷는 이 시기는 질서를 배우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의무에 짓눌린 삶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고독한 사막의 끝에서 낙타의 정신은 비로소 ‘사자’로 변모합니다. 사자는 자신을 억누르던 거대한 기존 가치에 맞서 “나는 원한다”라고 포효하며 외부로부터의 의무에 저항하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기 위해 투쟁하며 ‘자유를 쟁취하는 공간’을 확보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정신이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도약은 바로 ‘아이’의 단계입니다. 아이는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는 망각과 순수의 상징입니다. 아이에게 삶은 이겨야 할 전쟁터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 그 자체입니다. 어떠한 편견도 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첫 번째 움직임이 되고,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삶을 긍정하는 존재입니다.


잭 스패로우가 보여 주는 그 경쾌한 비틀거림은 바로 이 ‘아이’와 같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 편의 웃음을 제공하고, 또 한 편의 통쾌함 뒤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나요. 그는 세상이 정해 놓은 무게(낙타)를 비웃고, 억압적인 권위(사자)를 뛰어넘어, 삶이라는 바다를 오직 자신만의 유희로 채워 나가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긍정적인 항해자인 것입니다.

by Gemini

이러한 자유의 철학은 한스 짐머의 OST 탄생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2003년 당시, 한스 짐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주였습니다. 정해진 마감이라는 폭풍 속에서 그는 8명의 동료와 함께 밤을 새우며 메인 테마를 설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급박함’이 오히려 음악에 독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사실입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완벽한 미학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배가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긴박함 속에서 터져 나온 웃음과 유희가 음악에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초인이 기존 질서를 부수고 자신만의 가치를 실험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음악 속에 흐르는 거친 에너지와 변칙적인 전개는, 삶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혼돈이 파괴가 아닌 '새로운 창조의 재료'임을 증명합니다.


음악은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여기서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죠. ‘잭의 리듬’과 ‘데이비 존스의 권위’입니다. 잭의 테마 'The Medallion Calls'는 웅장한 금관악기로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그 기저에는 늘 불안정한 리듬이 흐릅니다. 음악적으로는 '싱코페이션(Syncopation, 당김음)'을 적극 활용하는데, 이는 정해진 박자(사회의 규범)를 교묘하게 비껴나가는 잭의 천재성과 예측 불가능한 자유를 상징합니다.


반면, 그의 숙적 데이비 존스의 테마는 냉정하고 기계적입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과 차가운 오르골 소리는 멈춰버린 심장과 과거의 상처에 갇힌 그의 영혼을 드러냅니다. 그는 거대한 힘을 가졌으나 진정한 자유를 잃은 자이며, 그 상실감을 '압도적인 권위'로 메우려 합니다. 잭과 데이비 존스의 음악적 대비는 곧 ‘리듬을 타는 유희’와 ‘박자에 갇힌 억압’ 사이의 긴장을 보여줍니다.


한스 짐머는 18세기라는 배경에 과감히 현대적인 전자음을 섞어 넣었습니다. 이 시대착오적 충돌은 잭 스패로우를 박제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내면의 항해자로 불러냅니다. 과거의 유산에 갇히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이 사운드의 융합은, 우리 역시 낡은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만의 사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영화와 음악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묵직합니다.


“당신의 수평선은 어디인가?”


잭 스패로우가 고장 난 듯 보이는 나침반을 보며 “저 수평선을 가져와(Bring me that horizon)”라고 말할 때, 음악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비틀거리는 순간조차, 그것이 자기만의 법칙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그 자체로 위대한 항해라고 말이죠.


우리 삶은 때로 조율되지 않은 악기처럼 시끄럽고, 박자가 맞지 않는 불협화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협화음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나만의 '블랙 펄'을 타고 항해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거친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용기, 그 비틀거리는 리듬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삶을 완성하는 초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음악을 통해 이 문장의 느낌을 가슴에 담아 보도록 하세요.


“당신의 수평선은 어디인가요?”


Pirates of the Caribbean Orchestral Medley, Zebrowski Music School Orchestra & Zygmunt Nitkiewi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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