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방향은 하나일 뿐
이번 주부터 B마을에 알 수 없는 냉기가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여전히 근사한 음식 냄새는 흘러나오는데, 골목 끝을 스치는 것은 오직 찬바람뿐이다. 이상한 기분에 단골 이웃들에게 넌지시 안부를 물어도 답신은 한참이나 늦게 날아온다.
틈만나면 찾는 ‘피드 마당’도 예전만큼 북적이지 않는다.
간혹 소식을 올리는 이들이 있어도 반응은 그저 그냥저냥, 냥냥하다.
정말로 많은 이들의 마음이 뚝 떨어져 버린 걸까?
실제로 어제도 오늘도, 정든 터전을 떠나 N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이삿짐을 싸는 이들의 작별 인사가 들려온다. 나 역시 그곳에 남긴 살림과 추억이 있어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시작했으니 겨울 무라도 한 뿌리 뽑아 썰어야지. 거시기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떨어진 만큼 다시 튕겨 올라갈 준비를 하는거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참 자주 무언가를 떨어뜨리며 산다. 손에 쥔 스마트폰만 바닥에 떨어지는 게 아니다. 마음속의 열정과 정성, 우리가 굳게 믿었던 기운 같은 것들도 한순간에 ‘쿵’ 소리를 내며 추락하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어에서 ‘떨어지다’라는 동사가 유달리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물체가 지면과 가까워지는 물리적 상황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의욕, 심지어 생존의 본능인 식욕까지 중력의 법칙 아래에 둔다.
예컨대 “정떨어진다”는 표현은 서늘하다 못해 거의 냉동창고급이다. 한때 나를 감싸던 따뜻한 온기가 어느 비극적인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연상된다. 정은 붙어 있을 때는 온도를 높여주지만, 떨어지는 순간에는 지독한 냉기를 남긴다.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더니, 참 잔인하고도 명확한 언어적 운명이다.
“밥맛 떨어진다”는 말은 또 어떤가. 먹는 즐거움은 일상의 작은 위안이자 가장 원초적인 보상이다. 내 체중 80kg가 그냥저냥, 냥냥하며 찐게 아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무례한 한마디나 기분 잡치는 사건 하나에 그 소중한 맛이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마치 고도 3만 피트에서 엔진이 고장 난 여객기가 수직 낙하하는 것처럼, 인간의 활력이라는 연료가 순식간에 방전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왜 좋을 때를 ‘위’, 나쁠 때를 ‘아래’라고 표현할까? 아마 우리가 중력을 거스르며 직립 보행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 날아갈 듯 가벼워져 지면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착각이 들지만, 실망하면 마음의 무게추가 갑자기 몇 배로 늘어나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결국 무언가 ‘떨어졌다’는 것은 내가 소중히 여기던 가치들이 더 이상 높은 곳에 머물 힘을 잃고, 내 손을 떠났음을 의미한다. 떨어진 의욕을 다시 주워 담는 일은 깨진 접시를 다시 붙이는 것만큼이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든다.
하지만 ‘바닥’이라는 공간을 달리 보면, 그곳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자리다. 정이 바닥을 치고, 밥맛이 떨어지고, 의욕이 추락한 그 순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재정비’라는 기회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떨어져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가 무엇에 기대어 서 있었는지, 무엇이 나를 떠받치고 있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바람에 휘둘리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정내미가 떨어지고 할 맛이 뚝 떨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끝은 아니다. 오히려 바닥은 새 출발을 위한 가장 단단한 발판이 될 수 있다.
더 떨어질 곳이 없으니, 이제 남은 방향은 단 하나뿐이다.
일단, 잠시 쉬자.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올라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