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으로 녹아든 사유의 발자취
※ 이 글은 독자가 질문한 주제를 '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답글입니다. 그래서 '삶'과 '사유'가 함께 녹아져 있답니다. 충분한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어둑한 새벽, 커피 한 잔을 내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어제도, 그제도 같은 자리에 앉아 익숙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 하지만 스물다섯의 손과 마흔다섯의 손, 그리고 은퇴 후의 손이 느끼는 커피 한 잔의 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쌓이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결이 서서히 바뀌는 일에 가깝다. 삶은 그렇게 우리를 돌이킬 수 없이, 그러나 한층 깊은 존재로 빚어낸다. 그 결을 다듬어 주는 도구가 있다면,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세 가지 시선, 과학과 철학, 그리고 심리학일 것이다.
갑자기 학문 이야기라니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껍고 어려운 학술지 속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혹은 깊은 밤 잠 못 들고 천장을 응시하다가 문득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그 찰나. 그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삶 속에서, 지혜를 더듬는 시간들에 대한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정답을 찾던 시절 - 과학의 눈
누구에게나 앞만 보고 달리던 때가 있다. 취업 준비, 첫 직장, 낯선 도시에서의 홀로서기. 아이러니한 것은, 홀로서기를 한다면서도 정작 자신의 길보다 타인의 발자취를 먼저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이 길로 몇 킬로미터, 저 신호에서 좌회전. 가장 빠른 길, 가장 효율적인 방법. 모든 것에 명확한 정답이 있을 거라 믿었고, 그래야만 안심이 됐다.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관찰하고 실험하여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과학적 시선, 오귀스트 콩트가 말한 실증주의(Positivism)가 바로 그것이다.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아주 단순한 태도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확신'이라는 이름의 이정표가 필요하다. 젊은 시절 우리가 원하는 건 흐릿한 가능성이 아니라 명확한 정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 처음 발을 내딛는 사람에게 가장 든든한 길잡이가 된다. 어림짐작이 아닌 분명한 확신만이, 첫걸음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길이 끊겼을 때 - 철학의 물음
그런데 살다 보면 내비게이션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분명히 맞는 길이라 믿었는데 막다른 골목이 나타나거나, 열심히 달려 도착한 곳이 내가 꿈꾸던 풍경이 아닐 때. 직장에서의 회의감, 예상치 못한 관계의 균열, 혹은 어느 날 아침 이유 없이 찾아온 공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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