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가르쳐준 삶의 두 가지 보폭
일본 북해도에 갔을 때, 그곳의 눈은 '내린다'기보다 '퍼붓는다'는 표현이 차라리 어울렸다. 평생 그런 눈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겨울 한복판에 설 때마다 문득 두 도시의 풍경이 겹쳐지곤 한다.
매일같이 하늘에서 흰 도화지가 쏟아지는 북해도의 하루와, 어쩌다 마주하는 폭설에 도시 전체가 숨을 죽이는 서울의 거리. 눈이라는 현상은 같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이들의 보폭과 호흡은 전혀 다르다. 이 차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삶에 대한 나의 자세를 성찰해 본다.
북해도의 건설(乾雪): 일상이 된 시스템의 고요
북해도의 아침은 참 얄궂다. 맑은 하늘을 보며 ‘오늘은 안 오려나’ 싶다가도 어느새 함박눈이 쏟아지고, 잠시 주춤하는가 싶으면 다시 기세를 올린다. 수시로 일정을 조율하게 만들고 때로는 포기하게도 하지만, 그곳 사람들에게 폭설은 예고 없는 불청객이 아니다. 그저 매일 아침 문을 열면 마주해야 하는 일상일 뿐이다. 좋고 싫고를 따질 겨를도 없이, 겨울이면 눈이 곧 삶의 대명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제설차의 굉음은 비명이 아니라 일상의 배경음악이다. 도로에는 이미 치워진 눈을 쌓아둘 넉넉한 여백이 있고, 지붕은 눈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도록 설계되었다. 사람들은 눈이 오는지 묻기보다 얼마나 쌓였는지를 가늠하며 기계적으로 삽을 든다. 여기에는 비장한 결심도, 호들갑스러운 비상대책도 없다. 오직 일상이 된 시스템만이 고요하게 흐를 뿐이다. 덕분에 보행로든 차도든 폭이 조금 좁아질 뿐, 빙판에 미끄러질 염려 없이 평소처럼 걷고 운전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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