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탈자를 심은 작가, 읽지 않는 독자
해외 생활을 하며 느끼는 엄살 같은 고충 하나를 고백할까 한다.
솔직히 한국어로 말할 기회는, 한국을 방문할 때 외에는 거의 없다. 듣는 일도 마찬가지다. 유튜브나 여러 플랫폼을 통해 접하는 것을 제외하면, 30년 동안 한국어를 제대로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글쓰기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연결되기 위해서.
그러다 보니 내가 쓴 글에는 유독 오탈자가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아주 평범한 단어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거나, 검색창과 AI의 도움을 빌려야만 문장을 완성할 수 있다. 나에게 글쓰기란 단순한 창작을 넘어, 흩어지는 모국어를 붙잡는 치열한 복원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글을 마무리하며 잘못된 문법과 오탈자를 찾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비록 '중노동' 같은 과정이지만, 내게는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서운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일부 독자들이 글을 대충, 혹은 아예 읽지도 않고 ‘좋아요’만 남기는 모습을 발견할 때다. 물론 내 글과 나라는 사람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그 마음에는 깊은 감사를 느낀다. 하지만 정성껏 빚어낸 문장들이 시선의 끝에 닿지도 못한 채 소모되는 것을 볼 때면 씁쓸함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한 가지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나 역시 긴 글을 읽을 때 맥락만 파악하고 결론으로 건너뛰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에, 이 실험은 독자를 향한 불만이 아닌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독서 습관을 향한 질문이었다.
나는 ‘아주 가끔’ 발행하는 글 가운데 고의로 오탈자를 심어놓았다. 문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러나 주의 깊게 읽는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명백한 '틀림'을 문장 중간이나 끝에 묻어 두는 것이다. 일종의 작은 사회적 실험이자, 나의 글이 독자의 눈동자에 얼마나 정직하게 머물다 가는지 확인하고 싶은 치기 어린 확인 작업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무반응'이었다. 수백 명의 독자가 글을 '조회'하고, 수십 명의 독자가 '라이킷'을 누르며 따뜻한 댓글도 남겼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그 마지막 줄의 뒤틀린 글자를 지적하지 않았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딱 한 명, 내 글의 '멱살'을 잡듯 오타를 정중히 짚어준 독자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당혹감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나의 작은 실험이 누군가의 완전한 집중력 속에 닿았다는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한 명을 제외한 수많은 침묵 앞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왜일까? 내 독자들은 너무나 너그러운 것일까, 아니면 나의 글이 그들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소모되어 버리는 것일까. 궁금증이 생기는 일은 나에게 가장 기쁜 일이다. 그 속에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숨겨진 보물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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