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솔함, 진정성, 그리고 진실됨에 대하여
누군가 내게 묻는다.
거울 속의 나일 때도 있고, 내 글을 읽는 낯선 눈동자일 때도 있다.
“작가의 글은 정말 진솔할까?”
에세이를 쓰고, 시를 아끼며, 칼럼을 송고하는 나에게 그 질문은 늘 무겁게만 느껴진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세 가지 단어를 천천히 적어본다.
진솔함, 진정성, 그리고 진실됨.
진솔함은 어떻게 말하는가의 태도이고, 진정성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존재의 증명이며, 진실됨은 그 말이 사실인가라는 책임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쓸 때면 꾸며내고 싶은 유혹을 누르며 진솔함을 붙들고, 시를 쓸 때는 내면의 떨림을 놓치지 않으려 진정성을 더듬으며, 칼럼을 쓸 때는 세상의 눈을 속이지 않기 위해 진실됨을 새긴다.
진솔함이란 표현을 과장하거나 근사한 수식어로 덮지 않고, 내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로 드러내는 용기다.
일기보다 에세이가 무거운 이유는 나를 지켜보는 독자의 시선 앞에서도 여전히 발가벗은 마음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을 깎아내고 투박한 진심을 골라 적던 어젯밤처럼 말이다.
진정성은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깊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내면의 소리와 어긋난 문장을 적는 순간, 시는 그저 화려하게 치장된 거짓말이 되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언어를 고르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의 밑바닥을 응시해야 한다.
진실됨은 사실과 맺는 약속이다.
세상을 내 입맛대로 왜곡하지 않고, 보고 느낀 것을 정직하게 옮기려는 고집. 칼럼이 단순한 의견을 넘어 하나의 책임이 되는 이유는 그 안에 진실됨이 깃들 때뿐이다.
결국 작가란 이 세 가지 덕목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무너지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 균형을 잡으며 비틀거리는 사람일 것이다. 독자 앞에서는 진솔해야 하고, 자신 앞에서는 진정해야 하며, 세상 앞에서는 진실해야 한다.
이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두고 지켜야 할 가장 외롭고도 단단한 윤리일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세 가지를 완성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솔직함에 치우쳐 타인에게 무례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진실을 쫓다 문장이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미완의 상태가 좋다.
미완성이라는 말은 여기서 멈춰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 오히려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