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라는 성역, 브런치라는 광장

이름보다 문장이 먼저 도착하는 곳에 대하여

by Itz토퍼

“요즘 뭐 하세요?”

“글을 씁니다.”

그랬더니 대개 열에 아홉은 자동반사적으로 같은 질문을 되돌려 보낸다.


“아, 그럼 무슨 책을 내셨어요?”


이 질문은 꽤나 당혹스럽다. 통계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종이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시대(2023 국민 독서 실태조사)인데, 역설적이게도 사회가 요구하는 ‘작가’의 문턱은 여전히 그 읽히지 않는 종이책의 두께만큼이나 높고 단단하니까.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매일같이 수만 자의 텍스트를 소비하면서도, 정작 ‘작가’라는 호칭만큼은 종이 냄새나는 물리적 실체를 손에 쥐어본 이들에게만 허락하려는 묘한 보수성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읽고 있는 것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브런치에서조차 글을 쓰라 하면서, 결국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아이러니를 보라.)


그래서일까.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라고 덧붙이는 순간, 주변의 공기 밀도는 미묘하게 변한다. 방금까지 경외심을 담으려던 상대의 눈빛은 아주 미세하게 보정되고, 말끝에는 들리지 않는 괄호가 따라붙는다.


(아, 요즘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하셨구나.)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 않지만, 우리는 직감으로 안다. 그 침묵의 온도가 얼마나 싸늘한지.


문턱이 낮아진 자리의 숙명


아이러니하게도 브런치 작가의 위상은 브런치의 가장 큰 장점에서 공격받는다. 아주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쓸 수 있고, 검열보다 표현이 우선이며, 기다림 없이 독자와 직거래(?)할 수 있다는 것. 이 개방적이며 민주적인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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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도 작은 위로와 사유의 빛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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