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바람을 그리는 아이

일상의 틈을 메우는 호흡, 사유의 생활화

by Itz토퍼
멍 때림과 사유의 관계는?

by ChatGPT

초등학교 시절, 지역 사생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입니다.


도화지 앞에 앉아 건너편 오두막집을 그리려던 순간, 손이 멈췄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 저에게 선생님이 다가와 물으셨죠. “왜 그렇게 앉아 있니?”


난처한 표정으로, 오두막집을 그리고 있는데 바람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선생님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셨죠.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평소 즐겨 보던 만화책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만화 속에서는 나무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나뭇잎을 공중에 흩날리며, 풀을 한쪽으로 눕히는 방식으로 바람을 묘사하더군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는 흔적'으로 드러내는 간단한 지혜였습니다. 저는 오두막 주변을 관찰해 그 세 가지 흔적을 찾아냈고, 비로소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우리 일상 곳곳에 분명한 흔적을 남깁니다. 사유의 생활화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흔적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동 항법 모드'로 살아갑니다


요즘 우리는 '루틴'이라는 이름 아래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로 출근하며, 늘 먹던 메뉴를 고릅니다. 어제 했던 생각을 오늘 반복하고, 아마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익숙함은 삶을 효율적이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지만, 동시에 ‘나’를 잠들게 만듭니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나는 지금 깨어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관성에 의해 흘러가고 있는가?"


산골짝을 흐르는 물줄기는 바위틈을 타기도 하고 넓은 강을 만나 쉬어가기도 하지만, 수로에 갇힌 물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의 일상 역시 사회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수로 속에서 무심코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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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도 작은 위로와 사유의 빛을 담아,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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