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도 하지만, 읽기도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독서, 정독과 스캔

by Itz토퍼
by ChatGPT


작가는 ‘글을 잘 쓰고 싶다’고 말하고, 독자는 ‘잘 쓴 글을 제대로 읽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읽고 있는지도. 하지만 그 방식은 과거와 조금 다르다.


“그게 읽는 거냐? 그냥 보는 거지. 차라리 학술 칼럼이나 더 많이 써.”


디지털 환경에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친구가 툭 던진 말이다. 대학 시절 내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독서광이었고, 졸업 후에는 시집까지 낼만큼 활자의 문학성을 신봉하는 친구다. 그런 그에게 지금 세대의 디지털 글쓰기와 읽기는 못마땅해 보였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이제 잘 쓴 글이란 단순히 문장이 유려한 것을 넘어, ‘스캔’하는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결국 ‘정독’으로 이끄는 전략적 설계까지 포함해야 한다. 물론 이는 글을 쓰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읽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글쓰기와 읽기 모두에는 ‘스캔’과 ‘정독’ 사이의 긴장이 놓여 있다.


친구의 비판은 본질적으로 이 과도기에 대한 지적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대답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또 그렇다고 다 맞는 말 같지도 않아.”


과거 ‘읽다’의 대상은 주로 책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SNS 피드, 뉴스 헤드라인, 메신저 대화, 블로그 글, 영상 자막과 데이터까지 읽는다. 읽기의 대상은 이미 종이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도 책을 읽듯이 ‘제대로’ 읽고 있는 걸까. 우리는 과연 읽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보고 있는가. 앞서 언급처럼, '정독'인가 아니면 '스캔'인가?




혼자서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면 나는 습관처럼 공항 터미널 서점에 들른다.


항공기 엔진의 굉음 속에서 시작될 지루한 여정 동안,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읽을 책 한 권을 고르기 위해서다. 비행모드로 전환한 스마트폰에게 쉴 시간을 주는 그 순간, 무엇보다 종이를 넘기는 촉감과 책 냄새가 좋다. 젊은 시절에는 그 행위 자체가 어쩐지 나를 조금 더 ‘엘리트’로 만들어주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면을 펼친다. 그것이 더 편하고,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읽고 있는 사람들 역시 ‘읽는다’기보다는 ‘본다’에 가까운 방식으로 텍스트를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두를 훑고, 중간을 건너뛰며, 키워드를 찾는 눈의 방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이 문장조차 훑고 넘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문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돌아갈 것인지, 계속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잠시 멈춰 생각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task_01kpj36g4sf7c9hmenmr00st00_1776576333_img_1.jpg by Sora


오늘의 독서 방식 변화는 단순한 매체 이동을 넘어 우리의 사유 방식과 정보 수용의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여전히 책은 ‘정독’하며 ‘읽는 것’, 그 외는 ‘스캔’하며 ‘보는 것’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 글을 쓰는 이들은 독자의 시선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빠르게 떠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읽는다’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책 읽기는 본질적으로 선형적이다. 독자는 첫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까지 작가가 설계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리듬과 맥락을 쌓으며 자신만의 의미를 구성한다.


그래서 정독은 느리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의 여백에서 비로소 타인의 사유가 나의 철학으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정독은 단순한 읽기 방식이 아니라,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텍스트와 마주하기 위한 조건이자 깊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독이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걷는 사유의 산책이라면,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디지털 읽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시선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이동한다. 실제로 숏폼 콘텐츠를 많이 접할수록 시선의 고정 시간은 짧아지고 이동은 더 잦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이는 문장을 따라가는 눈이 아니라 자극에 반응하는 눈에 가깝다.


화면 위에서 독자의 시선은 여유가 없다. 서두를 훑고, 중간을 건너뛰며, 키워드를 찾는다. 이른바 ‘F자 형태’로 움직이며, 때로는 검색 기능이 맥락 이해를 대신한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피상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새 나 역시 그 흐름에 익숙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책을 들었을 때조차 헤드라인처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정말 좋아하던 작가의 문장조차 건너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공허함.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결코 비효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정보 과잉 속에서 뇌를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인 전략이자, 드론으로 지형을 빠르게 살피는 정찰과 같은 생존 전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읽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것만 빠르게 취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의 필연적 읽기 방식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결국 정독과 스캔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목적에 따라 선택하는 서로 다른 도구일 뿐이다. 정독이 이해와 사유를 위한 깊은 잠수라면, 스캔은 선택과 탐색을 위한 수면 위의 항해다.


중요한 변화는 읽기의 구조가 선형에서 비선형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독자가 작가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여행자’였다면, 지금의 독자는 하이퍼링크와 다층적 구조 속에서 스스로 경로를 설계하는 ‘탐색자’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덜 읽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르게 읽고 있을 뿐이다.


정독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스캔이라는 험난한 관문을 통과한 소수의 텍스트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권리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제 디지털 환경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스캔하듯 훑는 시선을 붙잡을 만큼의 선명함과, 정독을 견딜 수 있는 깊이 있는 구조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결코 만만한 과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를 해내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환경에서 글을 쓰는 이들의 몫일 것이다.


나 역시 오랜 시간 이 문제를 붙잡고 고민해왔다.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온 ‘책’이라는 형식은 장르와 작가의 개성에 따라 구성되어 왔을 뿐, 어떤 기계적 조건이나 디지털 환경의 영향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은 이미 너무도 자연스럽게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때로 모순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부담이 온전히 작가의 몫만은 아니다.


독자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의도를 가지고 읽는지, 그리고 필요한 순간 얼마나 깊이 머무를 수 있는지, 결국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환경’ 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짧아진 집중력도, 가벼워진 문장도 모두 디지털이라는 조건에 떠넘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읽는 방식은 도구가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를 늦출 것인지, 한 문장 앞에 잠시 멈춰 설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글 역시 다르지 않다. 빠르게 소비되는 문장들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문장의 결을 만지고, 의미의 층위를 쌓아 올린다. 그런 글은, 비록 화면 위에 놓여 있더라도 종이 위의 문장처럼 오래 머문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읽기와 쓰기는 서로를 닮아간다. 가볍게 스쳐 지나갈 수도, 깊이 파고들 수도 있다. 그 경계를 가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공항 서점에 들르듯, 어떤 글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습관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종이든 화면이든, ‘읽는다’는 행위를 지켜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읽기의 미래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정독과 스캔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스스로의 사유 지도를 그려내는 능력에 가깝다.


아마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새로운 읽기의 방식이자,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는 읽기의 완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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