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빛이 외면을 빚을 때
"내면이 잘생긴 사람을 그려볼래?"
AI의 ‘내면이 잘생긴 사람’에 대한 표현을 보며, 데이터로 축적된 ‘잘생긴 내면’의 정의가 생각보다 좁은 범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다만 동시에, 그 개념 자체가 언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면 그 속을 한번 자세히 볼 필요가 있겠군요.
대학시절, 당시에는 인기가 별로였던 성형외과를 전공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공부도 잘했지만,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춰 남자인 우리가 봐도 참 잘 생겼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곤 했습니다. 늘 주변의 시선을 끌 만한 외모였지만, 정작 이 친구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기보다는 농구 코트 위에서 땀을 흘리는 담백한 일상을 더 즐기던 참 건강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는 군 생활을 마친 뒤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90년대 강남의 중심에서 그의 이름 석 자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고, 말 그대로 큰 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정점에 서 있던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돌연 이민을 결심했습니다.
떠나기 직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낮고 신중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야, 어느 순간부터 잘생김의 기준이 너무 뚜렷해진 것 같아. 다들 똑같은 얼굴 사진을 들고 오거든. 나는 이제 타인의 욕망을 위해 메스를 드는 일이 조금은 버거워졌어."
솔직히 그때는 친구의 고뇌를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상 이치라는 게 원래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며 굴러가는 것이 아니냐고, 그의 결정이 조금은 예민한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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