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산 채로 먹히는 자들의 밤

기생벌의 잔혹함과 설계된 세계의 붕괴

by Itz토퍼
task_01kpqj5g81er38s7fwxbmmg1hf_1776759804_img_0.jpg by Sora


세상은 늘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무료’, 이 세상에 정말 공짜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짜 치즈는 쥐덫 안에만 있다(The only free cheese is in the mousetrap).” 겉으로는 아무런 조건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떤 대가가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수많은 ‘무료 서비스’를 마주합니다. 어쩌면 그 편리함과 호의에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점점 더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들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정말 ‘공짜’일까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무료' 디지털 세계는 단순히 자비로운 창조주가 만든 낙원일까요. Instagram이나 TikTok 같은 플랫폼은 초기 단계부터 수백만 달러의 자본을 수혈받았고,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정교한 지능과 글로벌 서버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시스템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오직 우리의 즐거움과 일상을 위해 자신들의 자원을 아낌없이 희생하면서 봉사하는 플랫폼일까요?


어쩌면 이들은 대신, 더 은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대가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수입이 없을 수가 있나요. 그 속에는 그들만의 방식대로 막대한 수입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 조금은 비극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잔인한 비유를 통해 이 내막을 파헤칠까 합니다.


이 비극적인 구조의 원형을 우리는 160년 전, 찰스 다윈이 자신의 정원에서 목격했던 끔찍한 풍경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task_01kpq5fqmkf389va5bh2wkttz6_1776746519_img_1.jpg by Sora

다윈의 악몽: 정교하게 설계된 살육



1860년, 찰스 다윈은 자신의 정원에서 신의 자애로움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흔들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기생벌(Ichneumonidae)이 나비의 애벌레를 사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기생벌은 애벌레의 등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하고도 부드럽게 외과 의사의 메스보다 날카로운 산란관을 뽑아 애벌레의 여린 살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러나 벌은 숙주를 죽이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먼저 숙주의 신경계만을 교묘하게 마비시키는 독을 주입하여, 애벌레를 저항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로 묶어버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애벌레의 몸속에 자신의 알을 낳습니다.


살벌한 공포는 그 몸 안에서 알이 부화하는 순간부터입니다. 시간이 지나 알에서 깨어난 기생벌 유충들은 살아있는 애벌레의 몸을 파먹기 시작합니다. 더더욱 기묘한 것은 그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입니다. 심장이나 뇌를 먼저 먹으면 숙주가 죽고, 고기가 썩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충들은 지방이나 근육처럼 당장 죽지 않을 부위부터 갉아먹으며 숙주를 가급적 오래 신선하게 유지합니다. 애벌레는 자신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살점을 뜯어먹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죽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가 잠식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연히 발생한 사고일까요, 아니면 마지막 한 점의 살점이 남을 때까지 숙주를 강제로 살려두기 위한 자연의 잔인하고도 정교한 '설계'일까요?



디지털 산란관: 취약함을 파고드는 정교한 찬탈



작년 봄, 저는 교육계 인사들이 모인 한 강연에서 스마트폰 속 특정 플랫폼들을 ‘기생벌’에 비유하였습니다. 다소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비유는, 그 생태가 오늘날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 속에서 놀라울 만큼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아직 충분한 방어 기제가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이 구조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거대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설계한 알고리즘은, 마치 숙주를 겨냥해 정교하게 작동하는 ‘기생벌의 산란관’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이 비유는 자극적이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랫폼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무관한 이야기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들이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수익 창출 방식이 전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다양한 AI 서비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무료로 제공되지만, 그 이면에는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목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핵심 자산은 서비스 그 자체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산은 바로 ‘사용자’이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용자가 플랫폼 위에서 소비하는 ‘시간과 주의력’입니다.




알고리즘은 마치 기생벌 유충이 숙주의 급소를 피해 파먹듯, 사용자가 완전히 고갈되어 플랫폼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만 우리의 감각과 취약성을 정교하게 자극합니다. 그렇게 붙들린 우리의 주의력은 실시간으로 분석되어 광고주들에게 판매됩니다.


그 대가로 플랫폼 기업은 연간 수백억에서 천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광고 수익을 거둬들입니다. 결국 이 구조에서 거래되는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그 안에 머무는 우리의 시간이며 그 시간이 곧 플랫폼 기업의 가장 값비싼 '에너지원'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플랫폼은 이용자의 행동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콘텐츠든, 위험한 챌린지든, 일정 수준까지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둡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와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머문 시간은 곧 돈이 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비유가 과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 TikTok 이용자의 약 40%가 수면 부족을 호소하고, 상당수 청소년이 학업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지 개인의 부주의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유행하는 챌린지를 따라 하다 사고를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례들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나 책임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지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신체 이미지에 대한 불안이나 자해와 같은 위험한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현상은 시스템의 단순한 오류일까요, 아니면 사용자의 시선을 단 1초라도 더 붙들기 위한 철저한 경제적 계산의 결과일까요?


청소년의 대다수가 온라인 괴롭힘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끝없는 비교와 혐오의 정서는 숙주의 자존감을 도려내어 막대한 광고 수익으로 치환하는 유충의 성장 방식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화면을 넘긴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시간'과 '정신적 건강'이라는 소중한 자산은 조용히 소모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task_01kpq5cshgf0g8zexebk0tbztj_1776746427_img_1.jpg 너무 잔인해서 모자이크 처리 / by Sora

구조적 대응: 숙주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



기생벌의 유충에게 애벌레가 생명이 아닌 '고기 저장고'이듯, 거대 자본이 투입된 플랫폼 시스템에게 인간은 주체가 아닌 '수익 추출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요?


기생벌의 생존 방식이 자연에서의 효율적인 전략이었듯,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을 한 방울까지 짜내어 수조 원의 광고 수익을 만들어내는 이 구조 역시 자본주의의 논리 아래 최적화된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사회는 이 문제를 더는 개인의 선택이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으려 합니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 규제 강화와 미국의 '청소년 온라인 안전 법안(KOSA)' 논의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호주가 추진하는 강력한 조치들은 플랫폼 기업의 자율 규제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구조적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수익 시스템으로부터 잠재적 피해자들을 격리하려는 절박한 시도로 읽힙니다.


다윈은 기생벌의 산란관에서 신의 섭리가 아닌 '피할 수 없는 생존의 굴레'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푸른빛을 내뿜는 화면 앞에서 그 현대적 굴레를 스스로 목에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이 끊임없이 화면을 스크롤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알고리즘이라는 유충은 당신의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일에 사용할 소중한 시간과 관심을 한 조각씩 도려내어 광고 수익이라는 숫자로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숙주가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이 정원 안, 우리는 과연 주체적인 인간일까요, 아니면 마지막 한 점의 시간까지 소모되기를 기다리는 '디지털 숙주'일까요?


어쩌면 가장 큰 공포는, 우리가 이미 산 채로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이 설계된 세계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오늘 우리들의 어린 세대들이 막대한 광고 수익을 위한 ‘디지털 숙주’가 되고 있다면, 이 현실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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