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하나만

친구 아버지와 어머니의 끝 잇는 사랑

by Itz토퍼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친구 집.


그 시절 제일 떵떵거리는 부자가 쌀집과 방앗간인데, 이 집은 그 둘을 다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딱 하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아들 농사가 대대로 흉년이었던 겁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독자 집안. 그래서 이 이야기는 그 집 3대 독자가 태어나기 무려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응애애애~~~!”


“뭐꼬? 뭐꼬, 뭐꼬? 뭐라꼬? 배추껍데기? 그걸 어따 쓰노!”


그 집에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의 반응이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누나라고 부를 수 없는, ‘절대 이모’ 같은 존재였죠. 애지중지할 것 같은 큰딸이었지만, 집안에서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년 뒤, 또다시 들려온 울음소리.


“또? 또 배추 껍데기가?”


또 그 뒤에도 어김없이...


“뭐라꼬? 앞으로 김치 묵지 마라! 씨래기국도 묵지 마라! 배추밭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배추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결국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며느리를 친정으로 쫓아냅니다. 결국 무고한 친구 어머니는 보따리를 싸고 친정으로 피난살이를 떠나셨죠.


사실 이게 누구 탓일까요? 당시의 과학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친구 아버지는 기회만 나면 처갓집으로 달려가 아내를 챙기곤 했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마치 철새처럼 또 딸을 낳고, 또 친정으로 보따리 싸는 일이 반복됩니다. 낳고, 싸고. 가련하셨던 친구 어머니.


친구 아버지와 어머니는 밥을 먹다가도 젓가락만 부딪히면 전기가 통해 밥상을 밀어내는 사이인데. 그 결과는 또다시 들려오는 배추 타령뿐이었습니다.


“또... 또... 또......!!!”


“쌍둥이라꼬? 이거 미치겠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뒷목 잡고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야구에서 스리 볼이면 포 볼 한 번은 얻어낼 만한데, 이 집은 딸만 무려 열하나. 어느새 ‘최부자집’은 ‘딸 부잣집’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이 집은 돈 농사는 잘 짓는데, 아들 농사는 글렀다. 며느리가 뭔 죄가 있노, 지그들 씨가 그란데.”


그러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동분서주하며 부산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울산으로 마산으로 세상에 용하다는 약은 다 구해다 며느리에게 먹였습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이불 세트를 새 걸로 갈아치우며 정성도 쏟았습니다. 그렇게 십오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용가리가 태어난 겁니다!


그래서 친구 이름에도 ‘용(龍)’ 자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방앗간 최 씨 집안에 대경사가 터진 날이었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못해 농악대를 불러 깃발을 올리고, 쾡이나 칭칭나네를 사흘 동안 울려 퍼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 녀석과 술을 마실 때마다 항상 이 노래를 불러 주었죠.


“십오야 밝은 둥근달이 둥실둥실 둥실 떠오면

설레는 마음 아가씨 마음 울렁울렁 울렁거리네...”


십오 년 만에 태어난 녀석이잖아요.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 해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들려온 울음소리. 딸, 또 딸이었습니다. 이름을 짓기도 버거워 모두가 비슷비슷해졌습니다. 부산에서는 이름을 부를 때 끝 자만 부르기 때문에, 하나를 부르면 최소 셋은 달려옵니다. 작명소도 이름이 바닥났다 할 정도인데, 그래도 자꾸 낳습니다. 결국 방도 모자라 동네 최초의 3층 집까지 세워졌습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마침내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만 낳아라! 이제 됐다. 아 보다가 늙어 죽겠다!”

결국 그렇게 되시긴 했습니다.


그래서 막내딸 이름은 ‘끝순이’가 되었죠.


“끄~읏! 순아!”


그 바람에 친구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었고, 절대 이모 큰 누나가 졸지에 엄마가 되었죠.


그렇게 22년 동안 무려 1남 14녀. 대한민국뿐 아니라 기네스북에 올라도 될 규모였습니다. 세기의 어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나셨지만, 우리 학교 축구부만큼 많은 자식들 덕을 누리며 사셨던 복 많은 삶이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군 생활을 하고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저와 몇 친구를 위해 삼겹살 파티를 열어 주셨습니다.


“니거가 우리 집 아 몫까지 군대 갔다 온 거나 마찬가지다. 수고했다!”


사실 친구는 3대 독자라 대한민국 군대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거든요.

그날 친구 아버님이 소주 한 잔을 따라 주시며 하시는 말씀.


“우리가 아들 하나 낳을랏고 그렇게 바빴는 줄 아나? 아이다~”


그리곤 친구 어머니 쪽을 힐끔 보며 묘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빨리 가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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