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 땅콩도 눈치 봐야 한다면?
스몰토크(Small Talk)는 가벼운 대화, 즉흥적인 잡담을 뜻합니다.
날씨나 커피, 취미처럼 깊지 않은 주제를 통해 낯선 사람과 친근함을 형성하는 대화 기술이죠. 목적은 정보를 나누는 게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거나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제 식으로 말하자면, ‘심심풀이 땅콩 같은 대화’쯤 되겠네요.
한여름, 종로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입한 뒤 종각 쪽 카페로 향했습니다. 후배를 만나기 위해 카페로 가는 길, 땀이 비 오듯 쏟아지더군요. 겨우 자리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땀을 닦다가, 옆자리에 앉은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습관처럼 “오늘 날씨 정말 덥죠?”라고 한마디 건넸습니다.
그런데 순간, 그분의 표정이 토끼 눈이 되더니 고개를 홱 돌리시더군요.
‘이 아저씨가 나한테 작업 거는 건가?’ 하는 표정이랄까.
마음속에서 ‘아이고, 아재요, 뭐 하는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마침 그때, 대중에게 얼굴이 꽤 알려진 모 방송사 뉴스 편집장 후배가 들어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이구, 교수님, 제가 좀 늦었죠!”
그 순간 그 여성분이 고개를 살짝 돌려 저를 보는 눈빛이 ‘의왼데?’ 하는 듯했습니다.
물론 제 직업병으로 인한 상상이지만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그 후로는 가능하면 많이 조심하게 되고, 이왕이면 한국에서는 입꾹닫 모드를 유지하게 되더군요.
해외 생활이 길다 보니, 이런 어색한 상황을 자주 겪습니다.
한국에서는 단순한 스몰토크는 고사하고, Tiny Talk조차 종종 오해를 부릅니다.
비행기나 KTX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자리에 낯선 사람이 앉으면,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채 목적지까지 묵비권을 행사하죠. 가끔 입에서 ‘응아’ 냄새날 때까지 입꾹닫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아니면 자는 척, 혹은 이어폰 꼽고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마구잡이 뒤적이기.
서로의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운데, 대화의 거리는 지구 반 바퀴쯤 떨어져 있는 셈입니다.
이건 단순히 말재주나 표현력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말보다 맥락을 읽는 ‘고맥락 문화’ 속에 있습니다. 표정과 분위기, 관계의 깊이로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짧은 잡담. 즉 Little Chitchat은 ‘의미 없는 말’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말의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단순한 안부나 날씨 이야기가 ‘형식적’ 혹은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낯선 사람에게 Tiny Talk을 시도하는 일이 친절이 아니라 ‘선 넘기’로 오해받기도 하죠. 반면, 자신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과할 정도로 형식적인 말을 이어갑니다. 이게 또 우리의 아이러니죠.
결국 한국인에게 Tiny Talk은 단순한 대화 기술이 아니라, 관계 맺음의 문화적 방식이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서구 사회가 말을 통해 서서히 친밀해지는 문화를 갖고 있다면, 한국인은 침묵 속에서도 이미 친밀함을 짓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깊은 대화엔 강하지만, 작은 잡담에는 서툽니다.
하지만 어쩌면 Tiny Talk은 말의 무게를 줄이고, 대화의 온도를 다양하게 만드는 연습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진지함보다 가벼움이, 관계의 문을 여는 더 자연스러운 손잡이가 되기도 하니까요.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뭐가 스몰토크냐고요?”
“네, 바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