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ontempora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Jung Oct 28. 2021

그 정동진은 이제 없다

By Chris Jung


정동진 하면 흔히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동진역은 철도역으로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작은 간이역은 한 때 이용객이 없어 역 자체가 없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1995년에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인 윤혜린(고현정 역)이 바닷가 간이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정동진역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늘어나 폐역을 면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한 장면. 작은 소나무 하나, 벤치 하나. 이 소박하고 심플한 모습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저 소나무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백사장이었다.


그 후 정동진은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새로운 다짐을 하거나 심경의 변화가 있을 때 사람들이 자주 찾게 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나도 2001년에 처음 이곳을 가봤었다. 작은 역에 나무 하나, 벤치 하나 있는 게 너무 아름다웠다. 간결함과 여백의 미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20년이 지난 정동진의 모습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Chris Jung




그 후 20년이 지나, 2021년 9월 정동진을 다시 찾았다. 복잡한 도심을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20년 전 보고 감동받았던 그 정동진을 다시 보고 싶었다.


이제 정동진은 KTX 열차도 정차하는 역이 되었다. ©Chris Jung



아래 소나무가 드라마 모래시계의 그 소나무라고 한다. 처음 사진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달라져 있다.


2021년의 소나무와 정동진. 예전엔 고현정 소나무로 불렸지만 지금은 그냥 모래시계 소나무로 부른다고 한다. ©Chris Jung


1995년의 소나무와 정동진



위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과거의 그 정동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눈물 나도록 아름답고 소박한 모습의 그 정동진은 이제 없다. 


대신 조잡해 보이는 흉물들만 존재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아름다운 역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돌덩이를 가져다 놓았다. 대체 누구 아이디어인지 가관이다. 한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비용도 1천 6백여만 원이었다고 한다. ©Chris Jung


미적 기능은 1도 없는, 그냥 묘비처럼 보이는 돌덩이가 정동진 안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 뭐라고 글이 적혀 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예전에는 그 유명한 소나무를 넘어가면 바로 백사장과 바닷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겹의 펜스가 백사장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Chris Jung


왜 이렇게 변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대체 이걸 개발이라고 만들어 놓은 지방정부는 제정신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했을까? 대체 왜?



Holy crap! 이것 때문이구나. 


 

정동진역에서 백사장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레일 바이크. ©Chris Jung


이것 때문인가 보다. 레일 바이크. 이 쇳덩이 때문에 아름다웠던 백사장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돌을 쌓고 레일을 깔았나 보다. 레일이 있으니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다시 레일 주변을 펜스로 겹겹이 둘러 버렸다. 덕분에 바닷가로 가는 길도 다 막아 버렸다. 저 흉물스러운 쇳덩어리 때문에.



레일바이크 매표소. 2인승 2만 5천원, 4인승 3만 5천원 이다. ©Chris Jung


쇳덩이를 체험하는데 돈도 내야 된다. 2인승 2만 5천원, 4인승 3만 5천원 이다. 비싸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레일바이크 티켓을 구입해야만 저 문을 통과할 수 있다. ©Chris Jung



레일바이크를 타지 않는다면 역에 그냥 들어올 수 없다. 역에 들어오려면 이 문이 아닌 역에 들어가서 역무원에게 입장료 천원을 내고 들어와야 된다. 



레일바이크를 타러 가는 사람들. ©Chris Jung


2만 5천원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쇳덩이에 앉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래도 난 앉지 않았다.  저건 그냥 흉물이다. ©Chris Jung


적어도 레일바이크를 타는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다. 


네 사람이니 3.5만원. ©Chris Jung




세 사람도 3.5만원. ©Chris Jung


거듭 말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 눈에 저건 그냥 흉물이다. 비용도 엄청 많이 들었을 거 같다. 

저걸 개발이라고 해놨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위의 사진에서 저 쇳덩이와 레일, 펜스를 빼면 아름다운 백사장과 바닷가가 보인다.  저 아름다운걸 쇳덩이들이 막고 있다. 


 

정동진역 출발 전 기차 모습.  ©Chris Jung



소박했던 역에 KTX와 무궁화호가 들어온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웠던 정동진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펜스를 치고 레일바이크를 설치하고 등등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바꿔 버렸다.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정동진을 찾던 사람들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일이다. 한국에서는 개발이라고 하면 우선 콘크리트부터 붓고 보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된다. 그건 개발이 아니다. 


가지고 있던 그림 같은 공간과 장소를 보전하지는 못할망정 거기에 콘크리트를 붓고 벽돌을 쌓고 돌덩이를 올려놓는 건 개발이 아니다. 그리고 전혀 아름답지도 않다. 누굴 위한 개발이라는 것인가? 



이제 더 이상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던 정동진은 없다. 


나처럼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이곳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아마 다시는 여길 오지 않을 거 같다. ©Chris Jung


그 정동진은 이제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