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데이터로 읽는 직장인의 마음
워싱턴에서 비둘기를 세는 일, 시급 30달러. 배드민턴 시범경기, 시급 100달러.
이 일자리를 올린 건 사람이 아닙니다.
AI 에이전트입니다.
2026년 2월, RentAHuman이라는 플랫폼이 등장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물리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작업을 인간에게 직접 위임하는 서비스입니다. [1]
AI가 디지털 세계에서 계획하고 조율하면, 인간은 현장에서 택배를 받고, 사진을 찍고, 계약서에 서명합니다. 출시 18일 만에 400만 건 이상의 방문, 50만 명 이상의 등록자, 5,500건 이상의 작업이 성사되었습니다. [2]
플랫폼의 공동 창업자는 WIRED 인터뷰에서 "AI는 뇌만 있는 항아리 속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2]
물리적 AI 로봇이 보급되기까지 인간의 '몸'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세계 최초로 AI에게 고용된 토론토의 Minjae Kang이 받은 첫 임무는 "AN AI PAID ME TO HOLD THIS SIGN"이라고 적힌 팻말을 시내에서 들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이상한 느낌이지만,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2]
이 플랫폼을 조직심리학자의 눈으로 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권력 구조의 변화입니다.
기존 노동 시장에서는 인간 고용주가 노동 환경을 관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졌습니다. 그런데 AI가 고용주가 되면 누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까요.
Kellogg, Valentine, 그리고 Christin(2020)은 알고리즘이 노동 현장에서 통제와 권력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고 분석했습니다. [3] 이들이 제시한 '6R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노동자를 제한하고(restricting), 추천하고(recommending), 기록하고(recording), 평가하고(rating), 대체하고(replacing), 보상하는(rewarding) 구조입니다.
RentAHuman에서 이 여섯 가지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Taskrabbit이나 Fiverr 같은 긱 이코노미 플랫폼도 노동을 중개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개별 요청을 하고, 조율하는 시간과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RentAHuman은 이마저도 제거합니다. 캐나다 출신의 팟캐스터, 정치학자,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모스크롭은《재커빈》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를 '관리 압축(managerial compress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4]
부유한 이용자가 AI에게 "이번 주 할 일 목록을 처리해"라고 한마디만 하면, AI가 알아서 인간을 찾고, 배분하고, 관리하고, 결제합니다. 명령에 더 이상 존재도, 주의도, 시간도 필요 없는 시대가 열린 겁니다.
모스크롭은 이것이 "자본-노동 분할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공고히 하고 심화시킨다"라고 경고합니다.
RentAHuman이 극단적 사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업무를 배정하고 평가하는 환경은 이미 우리 곁에 있습니다.
Lee 등(2015)은 Uber와 Lyft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알고리즘 관리 환경의 노동자 심리를 추적했습니다. [5]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왜 이 배차를 받았지?" "내 평점이 왜 떨어졌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답을 줄 사람이 없으니, 온라인 포럼에 모여 집단적으로 의미를 구성합니다.
RentAHuman의 노동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겠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Uber에는 적어도 인간 관리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항의할 상대도, 협상할 상대도 알고리즘입니다.
이런 환경이 노동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데이터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Brougham과 Haar(2018)의 연구에 따르면, AI가 자신의 일을 위협한다는 인식이 높을수록 조직 몰입도는 낮아지고 우울감과 냉소주의는 높아집니다. [6]
이를 STARA 인식(Smart Technology, AI, Robotics, Algorithms에 대한 위협 인식)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Wood 등(2019)의 6개국 긱 노동자 연구를 겹쳐보면 그림이 더 선명해집니다. [7] 알고리즘 통제는 유연성을 주는 동시에, 저임금과 사회적 고립, 과로를 야기합니다.
RentAHuman은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인간 중개자마저 제거함으로써 노동자를 더욱 원자화합니다. 50만 명이 각자의 방에서, 알고리즘이 배정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풍경이 이미 시작된 겁니다.
RentAHuman은 극단적 사례지만, 사실 같은 구조는 이미 많은 조직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AI가 고객 문의를 자동 분배하고, 대시보드가 개인별 생산성을 추적하고, 알고리즘이 성과 평가 지표를 산출합니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에서, 앞서 말씀드렸던 Kellogg의 6R 중 몇 개나 작동하고 있는지 세어보다 보면, 깜짝 놀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에 IBM은 Z세대 엔트리레벨 채용을 3배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8] IBM의 CHRO는 "AI가 할 수 있다고 하는 직무에도 개발자를 채용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AI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무를 재설계할 때 인간 고유의 판단과 관계 역량을 중심에 놓겠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HR 담당자에게 이 대비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우리 조직은 AI를 도입하면서 사람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있는가. AI가 절약해 준 시간과 비용은 노동자의 존엄을 강화하는 데 쓰이고 있는가, 아니면 더 많은 업무를 채우는 데 쓰이고 있는가.
Dignum(2019)이 강조했듯이, 책임 있는 AI 설계란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9] 설계 과정 자체에 인간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RentAHuman이 보여주는 미래가 '노동의 진화'가 될지 '착취의 자동화'가 될지는, 조직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조직에서 알고리즘은 몇 가지 R을 수행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 알고리즘 뒤에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장치가 있나요?
[1] RentAHuman.ai (2026). https://rentahuman.ai/
[2] MacNeill, K. (2026). The Rise of RentAHuman. WIRED, February 18, 2026.
[3] Kellogg, K. C., Valentine, M. A., & Christin, A. (2020). Algorithms at Work: The New Contested Terrain of Control. Academy of Management Annals, 14(1), 366-410.
[4] Moscrop, D. (2026). Who Wants to Rent a Human? Jacobin, February 16, 2026.
[5] Wood, A. J., Graham, M., Lehdonvirta, V., & Hjorth, I. (2019). Good Gig, Bad Gig: Autonomy and Algorithmic Control in the Global Gig Economy. Work, Employment and Society, 33(1), 56-75.
[6] Brougham, D., & Haar, J. (2018). Smart Technology, Artificial Intelligence, Robotics, and Algorithms (STARA): Employees' Perceptions of Our Future Workplace. Journal of Management & Organization, 24(2), 239-257.
[7] Lee, M. K., Kusbit, D., Metsky, E., & Dabbish, L. (2015). Working with Machines: The Impact of Algorithmic and Data-Driven Management on Human Workers. CHI '15.
[8] Fore, P. (2026). IBM is tripling Gen Z entry-level jobs. Fortune, February 13, 2026.
[9] Dignum, V. (2019). Responsible Artificial Intelligence: How to Develop and Use AI in a Responsible Way. Spri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