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을 줄여준다는 약속, 왜 번아웃만 키웠을까

[시리즈] 데이터로 읽는 직장인의 마음

by 테오
image.png 출처: 마누스


AI 덕분에 시간이 남으면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쉬지 않아요.
같은 시간을 일하거나, 오히려 더 많이 일하게 됐어요.

UC Berkeley 연구진이 8개월간 미국 테크 기업 직원 4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AI 도구가 업무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업무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 AI가 업무 시작의 문턱을 낮추면서, 직원들은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을 일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하루 중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휴식 시간마저 AI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곧 일하는 시간으로 바뀐 것입니다.


Gallup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27%가 AI를 빈번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2%포인트 증가한 수치입니다. [2] AI가 약속한 '생산성의 빛'이 커질수록, '번아웃의 그림자' 또한 함께 짙어지고 있습니다.



생산성은 올랐는데, 왜 재미가 사라지는가


제가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생산성의 역설'이 여기서도 정확히 재현됩니다. Wu 등이 Nature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는 총 3,562명을 대상으로 4개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3]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AI와 협업하면 즉각적인 업무 성과는 향상되지만,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는 평균 11% 하락하고 지루함은 20% 증가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AI가 업무에서 가장 인지적으로 도전적인 부분, 즉 일을 자극적이고 보람 있게 만드는 바로 그 부분을 대신 처리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유능감(Competence)자율성(Autonomy)이라는 핵심 심리적 욕구가 동시에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4] '내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다'는 통제감이 사라지면, 성과가 올라도 일하는 재미는 빠져나갑니다.


흥미롭게도, AI 협업 후 혼자 업무로 돌아오면 통제감은 회복되지만, 대신 즐거움과 도전 의식은 사라진다고 연구진은 보고했습니다. [3] 이것이 AI 시대 동기부여의 진짜 딜레마입니다.




자동화-증강 역설: AI가 일을 빼앗고, 짐을 더하다


Kumar와 Krishnamoorthy(2024)는 이 현상을 '자동화-증강 역설(Automation-Augmentation Paradox)'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5] AI가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역량을 증강시키는 과정에서, 테크노스트레스(Technostress)가 발생하고 이것이 직원의 웰빙과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AI가 일을 더 잘하게 해주지만 일하는 재미는 빼앗아 가는 양날의 검입니다.


제가 기업 현장에서 목격한 사례도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AI 도구를 적극 도입한 조직일수록, 직원들의 처리 업무량은 눈에 띄게 늘었지만 몰입도와 에너지는 오히려 떨어지는 역설적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AI 자체가 아닙니다. AI가 만들어낸 빈 시간을 '더 많은 일'로 채우도록 내모는 조직의 구조와 문화입니다. UC Berkeley 연구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산성에만 집중하는 마인드셋은 장기적으로 매우 해롭습니다. [1]




멈춤을 설계하라: 지속 가능한 AI 협업의 조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UC Berkeley 연구진은 조직이 의도적으로 업무에 '멈춤'을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1] 방해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호하고, 인간적 연결과 사회적 교류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Shopify의 CEO 토비 뤼트케는 전 직원에게 AI 활용을 기본 역량으로 요구하면서도,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판단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문화를 재설계하고 있습니다. [6]


IBM은 오히려 AI 도입의 한계를 인정하고 Z세대 초급 인력 채용을 세 배로 확대했습니다. [6] 기술 도입과 인간 중심 역량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입니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생산성과 인간다움의 균형'을 어떻게 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조직은 AI가 만들어준 시간을 '더 많은 일'이 아닌, '더 깊은 사고'와 '더 따뜻한 관계'로 채울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당신은 AI를 사용한 후 더 충만해지셨나요, 아니면 더 지치셨나요? AI가 만들어준 시간을, 당신의 조직은 무엇으로 채우고 있나요?




References

[1] Ranganathan, A., & Ye, X. M. (2026, February). AI Doesn't Reduce Work — It Intensifies It. Harvard Business Review.

[2] Gallup. (2025). AI Use at Work Has Nearly Doubled in Two Years. Gallup Workplace Report.

[3] Wu, S., Liu, Y., Ruan, M., Chen, S., & Xie, X.-Y. (2025). Human–generative AI collaboration enhances task performance but undermines human's intrinsic motivation. Scientific Reports, 15(1).

[4]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5] Kumar, A., Krishnamoorthy, B., & Bhattacharyya, S. S. (2024). Machine learning and AI-induced technostress in organizations: automation-augmentation paradox. International Journal of Organizational Analysis, 32(4), 681.

[6] AI타임스. (2026). AI 안 쓰면 인사 불이익...'AI 네이티브' 강조하는 글로벌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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