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데이터로 읽는 직장인의 마음
안녕하세요, OO부문 OOO입니다.
여쭤볼 게 있어서 연락드렸는데요!
이번 주에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 보는 분이었습니다. 관계사 Talent Experience 팀의 담당자였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질문을 하셨고, 제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성실하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반응은 제가 알려드린 메신저 마지막 말풍선에 달린 '넵!' 스티커 하나였습니다.
확인 감사하다거나, 도움이 됐다는 의례적인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용건이 끝나자 대화가 끊겼습니다. 그런데, 해당 관계사 구성원과 소통하면서 이런 경험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메일로 문의하신 내용에 성심성의껏 작성하여 회신을 드리면, 그게 끝입니다. 기본적으로 메일 잘 받았다는 간단한 회신도 주지 않았던 경험이 지난 몇 년간 쌓여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같은 사람이 조직 밖에서 만나면 분명 높은 확률로 예의 바른 사람일 거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만들어낸 커뮤니케이션 습관의 문제가 아닐까요?
이런 경험을 조직심리학에서는 '직장 내 무례(Workplace Incivility)'라고 부릅니다 [1]. 무례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폭언이나 괴롭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술적 정의는 '낮은 강도의 일탈적 직장 행동으로, 해칠 의도가 모호한 것'입니다 [2]. 인사를 받지 않는 것, 인사를 하지 않는 것, 감사 표현을 생략하는 것, 상대의 시간에 대한 존중 없이 용건만 전달하고 끊는 것. 모두, 지난 몇 년간 해당 관계사 분들을 대할 때 경험한 것들입니다.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쌓이면 어떤 결과를 만들까요?
조지타운대학의 포라스(Porath) 교수와 선더버드경영대학원의 피어슨(Pearson) 교수가 14년간 14,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무례를 경험한 사람의 48%가 의도적으로 업무 노력을 줄였습니다 [1]. 66%는 자신의 업무 성과가 떨어졌다고 답했습니다. 78%는 조직에 대한 헌신이 약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12%는 무례한 대우 때문에 실제로 퇴직했습니다 [1]. 그리고 25%는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고객에게 전가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넵!' 스티커 하나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반복이 만드는 손실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맥킨지 보고서는 이 현상의 비대칭성을 지적합니다. 부정적 관계가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 관계의 영향보다 4배에서 7배나 더 강합니다 [3].
그렇다면 왜 조직 밖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는 인사가, 조직 안에서는 생략될까요. 선행연구를 살펴보니 크게 네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거래적 커뮤니케이션의 습관화입니다.
대규모 조직의 지원 부서는 하루에 수십 건의 내부 요청을 처리합니다. 그 과정에서 대화가 '정보 획득 → 종료'라는 거래 구조로 굳어집니다. 상대방이 사람이 아니라 정보 소스가 되는 것입니다.
사내 메신저가 이 경향을 더 강화합니다. 얼굴을 보지 않으니 상대의 감정을 읽을 필요가 없어지고, 대화는 점점 더 기능적으로 축소됩니다.
둘째,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의 효과입니다 [4].
반두라(Bandura)의 사회학습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관찰한 행동을 모방합니다. 선배가 메신저에서 용건만 전달하고 끊으면, 후배도 그것이 이 조직의 표준이라고 학습합니다.
의도적 무례가 아니라, 무례가 규범이 된 상태입니다. 입사 첫해에 가졌던 정중함이 1년, 2년 지나면서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에 동화되어 사라집니다. 한 동료의 표현을 빌리면, "그렇게 보고 배운 것"입니다.
셋째, 내집단-외집단 편향(In-group/Out-group Bias)입니다 [5].
같은 회사여도 다른 사업부, 다른 실, 다른 층에 있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외부인'으로 분류됩니다. 제 경험과 같이, 관계사 사람에 대해서는 더 할 것입니다. 자기 팀, 자기 회사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방식으로, 다른 부서, 다른 관계사 사람에게는 쉽게 합니다.
특히 대기업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조직이 클수록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상대를 '사람'이 아니라 '기능'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넷째, '갑의 위치'에서 습관화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조직 내에서 특정 부서가 구조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사 평가 권한, 정보 접근 권한, 의사결정 지원 권한을 가진 부서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부서에서 오래 일하면, 부탁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줄어듭니다. '가져와라', '달라'는 식의 지시형 커뮤니케이션만 경험하게 됩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동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관계사 구성원은 늘 갑의 위치에 있었어서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부탁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조직 구조가 만들어낸 행동 패턴으로 보는 것이 맞을까요?
여기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직심리학에 '조직 동일시(Organizational Identific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6]. 자신이 속한 조직의 정체성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현상입니다. 조직 동일시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소속감을 높이고, 몰입을 강화하고, 조직 시민 행동을 촉진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왜곡될 때 발생합니다. 조직의 외부 위상(Perceived External Prestige)을 자신의 개인적 지위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7]. 쉽게 말하면, "내가 다니는 회사가 대단하니까, 나도 대단하다"는 인식입니다.
매출 규모, 브랜드 인지도, 시장 지배력이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와 동일시 되는 순간, 커뮤니케이션에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다른 계열사 사람에게 반말을 하거나, 협력업체에 지시형으로 말하거나,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핵심 사업부'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다른 부서를 아래로 대하는 것입니다.
한 동료는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회사 위상, 매출과 자신의 위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타일러(Tyler)와 블레이더(Blader)의 '집단 참여 모형(Group Engagement Model)'에 따르면, 조직 동일시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7]. 하나는 외부 위상(우리 조직이 밖에서 어떻게 평가받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 존중(내가 조직 안에서 어떻게 대우받는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외부 위상이 높지만 내부 존중이 낮은 조직에서 역설적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8]. 구성원들은 외부적으로는 자부심을 느끼지만, 내부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이 불일치가 만드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 행동이 강해집니다. 외부인이나 하위 직급에게 더 권위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8].
제가 받은 '넵!' 스티커의 이면에는, 이런 구조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오늘 원래 발행 예약을 해두었던 글을 취소하면서까지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아이러니를 짚으려고 합니다. 사내 메신저에서 '넵!' 스티커 하나로 대화를 종료한 그분은, '사람을 다루는 HR' 소속이었습니다. 제가 대하는 해당 관계사 구성원들은 대부분 HR 업무를 하는 분들입니다.
특히, 이번에 연락 주신 분은 HR 중에서도, 조직 내 구성원의 경험과 관계의 질을 높이는 것이 역할인 부서 소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업무 커뮤니케이션에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그 담당자 개인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지난 글에서 다뤘던 'HR이 결정 이후에 호출되는 조직'의 또 다른 단면입니다. HR이 전략적 파트너가 아니라 정보 수집 기능으로만 작동하면, 커뮤니케이션도 그에 맞춰 거래적이 됩니다.
한국의 HR 부서는 조직 내에서 구조적으로 특수한 위치에 있습니다. 인사 평가, 승진, 배치, 징계에 관한 정보와 권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권한은 조직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다른 부서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비대칭적 권력 구조를 만듭니다.
문제는 이 구조적 권력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스며들 때입니다. 정보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수거'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하는 방식으로 대화하게 됩니다.
한 동료가 경험한 사례입니다. 컨설팅 프로젝트로 다른 관계사에 갔을 때, 20대로 보이는 HR 담당자가 40대 후반 수석 연구원에게 무시하고, 내려다보는 태도로 지시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 담당자에게 의도적인 악의가 있었을까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담당자가 조직 안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학습이론[4]의 관점에서 볼 때, 조직 내 학습된 행동 패턴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HR이 이런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 조직 전체에 어떤 메시지가 전달될까요. 포라스 교수의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견이 있습니다. 무례한 행동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목격'만 해도, 창의성이 30% 감소하고 도움 행동이 줄어들었습니다 [1].
HR이 거래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조직 구성원들이 목격하면, 그것이 '이 조직에서 허용되는 커뮤니케이션 수준'의 기준선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회사에서 HR은 조직 문화의 거울이자 기준점이 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거울이 흐리면, 조직 전체의 커뮤니케이션 수준이 함께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현상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SHRM(미국인사관리협회)의 2025년 Civility Index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출근 의무화(RTO) 정책을 시행한 조직에서 직장 내 무례 행동이 평균 63% 더 많이 보고되었습니다 [9]. 구조적 통제가 강화되면, 구성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도 거래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대규모 해고가 있었던 조직에서는 무례 행동이 67% 더 높았습니다 [9].
이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조직이 구성원을 통제의 대상으로 대할수록, 구성원들도 서로를 거래의 대상으로 대하게 됩니다. 아래 표는 이 글에서 다룬 구조적 원인과 그 결과를 정리한 것입니다.
해결책이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라스 교수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예의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무례는 반드시 비용을 만든다고 [3]. 그리고 변화는 리더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연구 결과, 리더가 예의를 실천하는 조직에서는 구성원의 심리적 안전감이 유의미하게 높았고, 정보 공유와 협업이 활발했습니다 [1].
자신의 메신저 대화를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부서나 관계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붙이고 있는지. 용건이 끝났을 때, 스티커 하나로 대화를 종료하고 있는지. 상대가 내 팀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의식적으로 정중함의 수위를 낮추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HR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면, 한 가지만 더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조직 전체의 기준선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이 시리즈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의 관점에서 보면, 감사 표현의 생략은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관계에 대한 기대를 훼손합니다. '내가 도움을 주면, 상대도 최소한의 인정을 해줄 것이다'라는 암묵적 기대가 깨지면, 다음번에는 도움을 주지 않게 됩니다.
조직의 협력은 이렇게 조용히 무너집니다.
한 동료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습니다. "그러니까 회사만 나가면 연락 서로 절대 안 하는 거지." 조직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거래적일수록, 조직 밖에서의 관계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퇴직 후 연락이 끊기는 것은 관계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관계를 유지할 만큼의 정서적 자산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넵!' 스티커 이후에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습니다"라는 한 줄을 더하는 것. 그것이 조직 내 심리적 계약을 유지하는 가장 작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오늘 한번 최근 사내 메신저 대화를 열어서 천천히 살펴보세요. 도움을 받은 대화에서, 감사 표현이 얼마나 있으셨나요?
[1] Porath, C. L., & Pearson, C. M. (2013). The Price of Incivility. Harvard Business Review, 91(1-2), 114-121. (17개 산업 800명 조사: 무례 경험자 48% 업무 노력 감소, 78% 조직 헌신 약화, 12% 퇴직, 25% 고객에게 스트레스 전가; 무례 목격만으로 창의성 30% 감소)
[2] Andersson, L. M., & Pearson, C. M. (1999). Tit for Tat? The Spiraling Effect of Incivility in the Workplace.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4(3), 452-471. (직장 내 무례 개념 정립: 낮은 강도의 일탈적 직장 행동, 해칠 의도 모호)
[3] Porath, C. L. (2016). The Hidden Toll of Workplace Incivility. McKinsey Quarterly. (부정적 관계의 영향은 긍정적 관계의 4-7배)
[4] Bandura, A. (1977). Social Learning Theory. Prentice Hall. (관찰 학습과 행동 모방의 이론적 기초)
[5] Tajfel, H., & Turner, J. C. (1979). An Integrative Theory of Intergroup Conflict. In W. G. Austin & S. Worchel (Eds.), The Social Psychology of Intergroup Relations. Brooks/Cole. (내집단-외집단 편향, 사회 정체성 이론)
[6] Ashforth, B. E., & Mael, F. (1989). Social Identity Theory and the Organization.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4(1), 20-39. (조직 동일시 개념: 조직 정체성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현상)
[7] Tyler, T. R., & Blader, S. L. (2003). The Group Engagement Model: Procedural Justice, Social Identity, and Cooperative Behavio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7(4), 349-361. (집단 참여 모형: 외부 위상과 내부 존중의 두 축)
[8] Fuller, J. B., Hester, K., Barnett, T., Frey, L., Relyea, C., & Beu, D. (2006). Perceived External Prestige and Internal Respect: New Insights into the Organizational Identification Process. Group & Organization Management, 31(1), 34-56. (외부 위상이 높고 내부 존중이 낮은 조직에서의 역설적 행동)
[9] SHRM. (2025). Civility Index. 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 (RTO 시행 조직에서 무례 행동 63% 증가, 대량 해고 조직에서 67%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