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교수'라는 직업은 사라질까

[시리즈] 데이터로 읽는 직장인의 마음

by 테오


image.png 출처: Gemini로 생성


몇 해 전 교수로 임용된 동료 연구자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최근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가 정말 무서울 정도예요. 논문을 쓰는 행위 자체가 너무 쉬워져서, 앞으로의 학계는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제가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논문의 가치가 과거보다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결국 깊이 있는 아이디어와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비슷한 시기에 대학원 강의를 하러 가서 지도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같은 주제가 나왔습니다. 은퇴가 가까워오신 교수님께서, 요즘엔 굳이 교수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AI가 모든 것을 더 잘 요약하고 정리해서 알려주는 시대인데, 교수로서 학생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시는데 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저도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연구를 하고 가르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이 질문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나온 데이터와 조사들을 살펴보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논문을 쓰는 것이 정말 쉬워졌습니다


이러한 우려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넬대학교 연구팀이 2018년부터 2024년까지 210만 편 이상의 프리프린트 논문을 분석한 결과가 2025년 12월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습니다 [1]. LLM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구자들은 그렇지 않은 연구자보다 논문을 30~50% 더 많이 게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시아 기관 소속 연구자들의 경우, 논문 게재량이 43%에서 최대 89%까지 증가했습니다 [1]. 언어 장벽이 낮아진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조금 복잡해집니다.


AI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논문은 문장의 정교함에도 불구하고, 동료 심사(peer review)를 통과할 확률이 오히려 낮았습니다 [1]. 세련된 문장이 약한 과학을 감추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AI 학회 NeurIPS에 제출된 논문들을 분석한 별도 연구에서도, 2021년과 2025년 사이에 객관적 오류가 평균 5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양은 분명 늘었는데, 질이 그만큼 따라가고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코넬대 연구를 이끈 이안 인(Yian Yin) 교수의 말이 와닿습니다.

"이제 질문은 'AI를 사용했느냐'가 아닙니다. '어떻게 사용했고, 그것이 도움이 됐느냐'가 질문입니다." [1]


그렇다면 논문의 가치는 어떻게 바뀌는 걸까요?

동료 연구자분은 "결국 깊이 있는 아이디어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중요해지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로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코넬대 연구에서 흥미로운 발견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LLM을 사용한 연구자들이 더 다양한 지식에 연결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1]. 연구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LLM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다양한 지식에 연결되고 있으며, 이것이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이끌 수 있다." [1].


이 발견을 보면서, AI 시대 논문의 가치가 세 가지 축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문장의 세련됨이 아니라 질문의 독창성입니다.

AI가 글쓰기를 대신해 주는 시대에, '무엇을 물었느냐'가 '어떻게 썼느냐'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의 해석입니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 남들이 보지 못한 패턴을 읽어내는 능력은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셋째, 연구 과정의 투명성입니다.

AI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어떤 판단을 인간이 내렸는지를 명시하는 것이 새로운 연구 윤리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춘 논문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가치가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반면, AI로 양만 늘린 논문은 동료 심사에서 걸러지거나, 설령 출판되더라도 인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결국 논문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무게중심이 '쓰는 행위'에서 '생각하는 행위'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굳이 내가 필요할까?


논문의 가치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게재된 논문을 읽고, 연구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 즉 교수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지도교수님의 고민이 계속 머릿속에 맴돕니다. "김 선생님, AI가 모든 것을 더 잘 요약하고 정리해서 알려주는 시대이다 보니, 최근에는 저도 교수로서 학생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이 질문이 저희 지도교수님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대학협회(AAC&U)와 일런대학교가 2025년 10~11월 미국 전역의 대학 교수 1,0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설문 결과가 있습니다 [3].


교수들이 생성형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다고 꼽은 인간의 능력이 기술적 역량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판단(judgment), 분별(discernment), 추론(reasoning), 검증(skepticism)이었습니다 [3].


흥미로운 것은, 이 중 추론과 검증은 최근 AI도 상당히 잘하는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거나 데이터의 일관성을 점검하는 작업은 AI가 오히려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들이 말한 추론과 검증은 조금 다른 차원의 것 같습니다.


"이 데이터가 논리적으로 맞는가"가 아니라 "이 데이터가 현실에서 의미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쓸모없는 결과를 걸러내는 것. 논문의 행간에서 저자가 의도적으로 빠뜨린 것을 눈치채는 것.


이런 종류의 추론과 검증은 수많은 논문을 읽고, 직접 연구를 수행하고, 실패를 겪어본 경험에서 나옵니다. AI가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것'과 교수가 '추론하는 것(경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동일한 단어를 쓰지만 다른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AI는 "이 논문에 무엇이 쓰여 있는가"를 5초 만에 알려줍니다. 하지만 "이 논문이 왜 중요한가", "이 주장의 전제에 어떤 결함이 있는가", "이 데이터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가"는 아직 알려주지 못합니다. 앞서 논문의 가치가 '쓰는 행위'에서 '생각하는 행위'로 옮겨가고 있다고 했는데, 교수의 역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교수의 가치는 처음부터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식을 판단하고, 의심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학생 앞에서 보여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교수라는 역할의 본질이 아니었을까요?




소프트스킬이 상위 역량이 되는 역전


이런 고민을 나누고 있을 때, 초두에서 언급했던 교수이자 동료 연구자가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이제는 하드스킬보다 소프트스킬이 상위역량이 되는 역전의 시대가 된 것 같아."


이 한마디에 꽤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까지는 학계에서든 기업에서든, '하드스킬'이 상위 역량이었습니다. 통계를 돌릴 줄 아는가, 코딩을 할 수 있는가, 방법론을 이해하는가. 이런 기술적 능력이 전문성의 척도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AI가 이 하드스킬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조용한 역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AAC&U 설문에서 교수들이 꼽은 판단, 분별, 추론, 검증은 전부 소프트스킬에 해당합니다 [3]. 기술적으로 가르치기 어렵고, 매뉴얼로 정리할 수 없으며,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되는 종류의 능력입니다.


전문가가 넘쳐나는 시대, 진짜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글에서 소개했던, 윈저(Winsor)가 제안한 'Thought Doership'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프레임워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행해 본 경험, 실패에서 배운 구체적 지식, 상황에 맞게 판단을 조정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AI 시대의 상위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교수의 가치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AI가 더 잘합니다. 하지만 "이 이론이 현실에서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자신의 경험으로 설명하는 것, "이 방법론의 한계를 내가 직접 겪었을 때 어떤 대안을 찾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AI가 대신하기 어렵습니다.


지도교수님이 "굳이 내가 필요한가"라고 물으셨다면, 조심스럽게 이런 답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수는 점점 자리가 좁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판단의 모델로서의 교수,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멘토로서의 교수는 오히려 더 필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AI가 모든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시대에,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더 귀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하고자 함의 시대


같은 대화에서 한마디가 더 나왔습니다.


"하고자 함의 시대. 의욕이 있으면 더 얻을 수 있는 시대인 것 같아. "


AI가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논문 쓰기도, 코딩도, 디자인도, 콘텐츠 제작도. '시작하는 것' 자체는 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쉬워진 만큼 경쟁의 기준선도 함께 올라가고 있습니다.


코넬대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AI로 논문을 30~50% 더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그중 동료 심사를 통과하는 비율은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1]. 양은 AI가 도와주지만, 질에 대한 최종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계속 다뤄왔던 주제들과도 연결됩니다. AI 에이전트 글에서는 인간과 AI의 협업 구조를, 심리적 계약 글에서는 조직과 개인의 기대 변화를, AI 피로 글에서는 생산성의 역설을 이야기했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글이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AI가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넓히고 있지만, '해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라는 것.


교수가 필요 없어지는 게 아니라, 교수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의 가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치의 기준이 이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무엇을 하고자 하느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고민 끝에 동료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프롬프팅도 전문성이 뒷받침되어야 더 좋고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 같은데, 곧 이 부분도 AI가 보완해 줄 수 있을 거라는 말에 공감이 되었어요. 그래서 결국 남는 건, 무엇을 물을 것인가, 그리고 왜 그것을 물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은 AI에게 무엇을 묻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질문은, 당신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서 나온 것인가요?




References


[1] Kusumegi, K., Yang, X., Ginsparg, P., de Vaan, M., Stuart, T., & Yin, Y. (2025). Scientific Production in the Era of Large Language Models. Science, 390(6779), 1240. (210만 편 프리프린트 분석: LLM 사용 연구자 논문 30-50% 증가, 아시아 기관 43-89% 증가, AI 작성 논문 동료 심사 통과율 하락, 다양한 지식 연결 경향)

[2] Bianchi, F., Kwon, Y., Izzo, Z., Zhang, L., & Zou, J. (2025). To Err Is Human: Systematic Quantification of Errors in Published AI Papers via LLM Analysis. arXiv preprint arXiv:2512.05925. (2021-2025년 객관적 오류 평균 55% 증가)

[3] AAC&U & Elon University. (2025). The AI Challenge: How College Faculty Assess the Present and Future of Higher Education in the Age of AI. (미국 교수 1,057명 설문: AI 시대 핵심 역량으로 판단·분별·추론·검증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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