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자폐래요 18

(25.12.07)

by 우리 아빠

우리 딸이 교회 유아부에서 가장 율동을 잘한다.


유아부의 예배시간 마다 있는 찬양과 율동 시간에

우리 딸만큼 모든 동작을 외워 따라 하는 친구가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면 다른 부모님들도 놀라신다.


"와, 우리 너무 잘해요. 지금 이 동작들을 다 외운 건가요?"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꼐 우리 딸의 상황을 자세히 말씀드린건 아니라

(물론, 눈치채고 계신 분들도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은 그저 우리 아이의 암기력이 참 뛰어나다며 건네는 칭찬의 말들이다.


이런 우리 아이를 보며 '우리 삶의 시간표'에 대해 여러 생각이 스쳤다.


아기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은 유아기에는 각 개월 수마다 발달 사항을 측정하는 항목들이

마치 미션과 퀘스트처럼 쭉 나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몇 개월부터는 뒤집어야 하고, 또 몇 개월 뒤에는 걸여야 하며,

이때는 첫 발화가 시작되고, 이 시기엔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 한다는 기준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대표적인 발달장애가 피부로 와닿는 요즘,

그리고 그 불안이 의심의 단계였던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규칙들은 알게 모르게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마음에 상처를 내고는 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저 우리 아기만의 성장 속도가 있는 것이다.'


믿고, 받아들이며 다시 되새김질 하는 요즘,

지금 와서 보면 그 많은 시간표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다.


그 와중에 여러 아이들 중 월등히 뛰어난 우리 아이만의 그 무언가가

나를 다시금 그 시간표들의 덧없음을 깨닫게 했다.


사실 이뿐일까.

지금껏 살아오며 수없이 마주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그리고 학창시절을 내내 귀에 피가 나도록 듣던 학습 진도.


입시, 군대,

취업, 연애, 결혼.


"이 시기엔 이런 걸 해야지."

"이 시기엔 이만큼을 이루어야지."


'요즘 세상에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는거지'라는 내면의 생각이 무색하도록

나 역시 세상이 정해놓은 이정표들을 누구보다 성실히 지키려 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빠르게, 더욱이 성공적으로 그 미션들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생각으로는 부족하다.

정말이지 확고한 가치관으로 뚜렷하게 새겨야 하는 말이 되었다.


"인생엔 각자의 속도가 있는거지."


우리 아이는 누구보다 율동을 잘한다.

몇 번만 보고도 놀랄 정도로 동작을 외워 춤을 춘다.

정말이다. 우리 아기에게 희망적인 면을 찾고싶어 몸부림치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닌.


오늘도 베베책의 내용을 수 없이 내뱉는 지연반향어의 향연이었지만,

'우리야'라는 부름의 20%정도의 성공률을 보이는 호명반응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우리 아이의 장점과 강점이 있다.


'우리 아이의 각기 다른 부분, 그리고 그곳들이 알알히 자라는 우리만의 속도가 있는거지.'


'우리 아기의

조금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가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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