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04)
오늘은 첫눈이 내렸다.
꽤 많은 양이 한꺼번에 내려, 길거리는 온통 하얗게 겨울옷을 입었다.
덕분에 잠실에서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나는
30분씩 지연되어 있는 버스와 기나긴 사람들에 줄을 뒤로하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지하철을 이용해 퇴근했다.
그래도 퇴근길에 마주한 풍경은 너무 예뻤다.
당장 내일의 출근길과
아내가 우리 아기를 안고 갈 어린이집 등원길이 걱정이지만
하얗게 내린 모습들에 나도 모를 탄성이 나왔다.
나는 이렇듯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잠잠하고 평온하다.
조금 더 위기감을 갖고, 조급함을 무기로 장착한 채
단 한순간도 우리 아기의 정상 발달을 위한 책임을 잊지 않으며
숨 쉬는 순간마다 내뱉는 공기마다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의 내 마음은 생각보다도 잔잔하다.
이런 마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 않을까,
함박눈으로 뒤덮인 모습들을 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난 우리 아기가 너무 사랑스럽다.
더욱 솔직한 마음을 내뱉자면,
자폐라는 진단을 듣기 전보다 두 배는 더 사랑스럽고 기특하고 대견하고 갸륵하다.
아빠가 하는 사소한 장난에 꺄르륵 웃는 우리 아기의 모습이.
'oo하고 싶어'라며 자신의 필요를 얘기하는 둥그런 입술이.
내 무릎에 앉아 자랑스럽게 자신이 외운 책을 목청껏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가.
'아빠 안아줘'라는 말에 우다다 달려와 안기는 아기의 조그마한 무게마저.
잠들기 전 '아빠가 꼭, 엄마가 꼭'을 외치며 우리 부부의 사이로 들어와 폭 잠에 들어가는 평온함까지.
그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난 온전히 느껴지는 이 감정들이 행복하고,
이 행복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감사함에 안도하며
그렇게 우리 아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힘껏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내 아내의 노력들이 있다.
참 아내에게 요즘 여러 가지 배우는 것들이 많다.
착하고 여리고 눈물많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런 모습이 예쁜 사람인데
우리 아기를 건강하게 키우고자 하는 마음들과 다짐들이
나보다도 훨씬 단단하고 침착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아내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면
내가 여전히 많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같은 공간과 시간에 살고 있다니.
내 주제와 깜냥에 너무 과분한 사람과 결혼했다.
아내는 오늘도 야무지게 집안일을 하고,
아기와 함께 있는 힘껏 시간을 보내다
온 힘을 다한듯 '우리'와 함께 기절해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다.
이런 아내와 함께라면
'우리'아기도 끝까지 행복하게 지켜낼 수 있을것만 같아
손끝이 저릿하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감사한 일들 투성이야.
저 구석 한모퉁이에 잊고 살던 보물상자 하나를
나는 이제서야 발견한 것 같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요즘 평온해졌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오늘도 참 행복했다.
계속 이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
우리 아기랑,
끝까지,
변함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