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30)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충격적이었는데,
아직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
옆에 있는 편한 친구 같은 말이 된 것 같다.
‘내가 너무 안일한가’
누군가는 삶이 무너지고,
몇 년 동안이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매일 눈물을 흘렸다던데.
벌써 괜찮아져도 되는 건가.
아니,
괜찮아졌다고 여기는 이 생각 자체가 자만인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내 마음은 꽤 안정적이다.
물론 그 짧은 기간 동안
나 역시 살이 5kg이나 빠졌다.
요 몇 년 우는 일이 없던 내가 한바탕 눈물도 쏟아보고,
삶을 보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변했다.
‘난 그 어떤 시련도 극복할 것이다.’
‘난 그 어떤 불행도 피해 갈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장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학교에서 시험 100점을 맞아 오는 기특한 우리 딸.
공부를 잘해 높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 누가 봐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능력 있고 잘난 모습의 우리 딸.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
반장을 도맡아 하고,
요런저런 취미들도 척척 해내며
다재다능의 대명사가 되어 가는 우리 딸.
가슴 한 켠,
그래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보던 우리 딸의 모습들과도
빈틈없이 작별했다.
받아들이고,
빌고,
겸손해지며,
겸허해졌다.
삶은 나의 노력으로 개척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아니, 주어지는 것이었다.
내 생각이 짧았다.
이토록 난 많이 변했고,
지난 두 달은 이만큼 격변의 시간이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나는 지금 편안하다.
그저 집에 가 웃는 우리 아기의 미소를 보면 감사하고,
“오빠! 우리 애기 오늘도 수업 잘 받았어.”
그 한마디에 안도하고,
회사에 앉아
그래도 내가 20년째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며,
“우리 와이프랑 애기 맛있는 거 사줘야지.”
중얼거리는 내 모습이 다행스럽다.
이제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내년에도 이런 마음일 수 있을까.
어떤 어려움이 불어닥칠지 예상되지 않아,
잔잔한데 무섭다.
그래서 글을 쓰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들을 토해 내다 보면,
두서없는 글자들 사이에서
결국 햇살 부서지듯 웃고 있는 우리 아기가 보인다.
다행이야.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