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자폐래요 26

(25.12.30)

by 우리 아빠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충격적이었는데,

아직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

옆에 있는 편한 친구 같은 말이 된 것 같다.


‘내가 너무 안일한가’


누군가는 삶이 무너지고,

몇 년 동안이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매일 눈물을 흘렸다던데.


벌써 괜찮아져도 되는 건가.

아니,

괜찮아졌다고 여기는 이 생각 자체가 자만인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내 마음은 꽤 안정적이다.


물론 그 짧은 기간 동안

나 역시 살이 5kg이나 빠졌다.


요 몇 년 우는 일이 없던 내가 한바탕 눈물도 쏟아보고,

삶을 보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변했다.


‘난 그 어떤 시련도 극복할 것이다.’

‘난 그 어떤 불행도 피해 갈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장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학교에서 시험 100점을 맞아 오는 기특한 우리 딸.

공부를 잘해 높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 누가 봐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능력 있고 잘난 모습의 우리 딸.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

반장을 도맡아 하고,

요런저런 취미들도 척척 해내며

다재다능의 대명사가 되어 가는 우리 딸.


가슴 한 켠,

그래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보던 우리 딸의 모습들과도

빈틈없이 작별했다.


받아들이고,

빌고,


겸손해지며,

겸허해졌다.


삶은 나의 노력으로 개척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아니, 주어지는 것이었다.


내 생각이 짧았다.


이토록 난 많이 변했고,

지난 두 달은 이만큼 격변의 시간이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나는 지금 편안하다.


그저 집에 가 웃는 우리 아기의 미소를 보면 감사하고,

“오빠! 우리 애기 오늘도 수업 잘 받았어.”

그 한마디에 안도하고,


회사에 앉아

그래도 내가 20년째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며,

“우리 와이프랑 애기 맛있는 거 사줘야지.”

중얼거리는 내 모습이 다행스럽다.


이제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내년에도 이런 마음일 수 있을까.

어떤 어려움이 불어닥칠지 예상되지 않아,

잔잔한데 무섭다.


그래서 글을 쓰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들을 토해 내다 보면,


두서없는 글자들 사이에서

결국 햇살 부서지듯 웃고 있는 우리 아기가 보인다.


다행이야.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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