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3)
내 삶엔 큰 실패가 없었다.
유복하진 않았지만 성실한 아버지와 큰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좋은 사람들, 친구들을 만나 굴곡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사춘기가 나의 세상을 온통 헤집어 놓던 시절엔 음악이란 빛깔에 온통 매료되었고,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까지 생기는 행운을 차지했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꿈만으로 간직했던 그 길을
"저는 음악만 하면 배고파도 행복할 것 같아요."
고3이 시작될 무렵, 담담히 고백한 철없던 그 한마디에
엄마, 아빠는 "1년만 밀어줄 테니 실패하면 재수할 땐 공부해서 대학가!"
조건부 허락을 해주셨다.
하지만 너무나도 좋은 입시 선생님을 만났고,
운 또한 한가득 내 곁을 지켜주어
'재수'없이 서울 모 음악대학 작곡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나에겐 뚜렷한 실패가 없었다.
때에 맞춰 들어간 군대는 군악대로 차출.
제대하고 복학한 대학에선 졸업 전에 첫 취업 (드라마 음악을 주로 작업했다.)
엄청난 야근과 소박한 월급에 고민이 커질 무렵, 규모 있는 게임회사 작곡가로 이직.
그러다 내 주제에 맞지 않는 착하고 예쁜 와이프를 만나 결혼.
행복한 신혼생활.
그리고 너무나도 원했던 딸.
우리 예쁜 딸.
나는 기고만장했다.
자잘한 어려움들과 소박한 퀘스트들이 내 삶을 방해해도
나는 극복할 수 있다.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자만했고, 거만했다.
지난 주 우리 딸의 '자폐 스펙트럼'을 듣기 전까지는.
이제 일주일이 조금 넘어간다.
마음은 진정되는 듯 거칠고, 가라앉는 듯 거세게 요동친다.
온갖 생각들은 아직도 머릿속을 스치다 한순간에 쓸려나가기를 반복한다.
지금 주어진 이 시련은
도무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다 최악의 그 무엇을 생각해 보기에 이른다.
"하지만, 난 그래도 우리 와이프, 딸이랑 행복할건데.
행복할 수 있는데 !
.
.
.
행복하긴 할 건데..."
우리 딸의 자는 모습만을 보고 싶지는 않아서,
아침 일찍 출근해 9시쯤 집에 도착하는 매일의 챗바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내 온종일을 배회하다
마침내 마주한 컴컴한 퇴근길, 따스한 우리 집.
"우리야 !"
아기 방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방금 들어온 나에게
우리 아기가 말해주었다.
"아빠 왔어! 드디어, 아빠가 왔어요!'
하루 종일 꾹꾹 눌러왔던 말이 탄식처럼 터져 나왔다.
"행복해!"
나 오늘은 그래도,
여전히 실패하지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