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욕이 많다

누가 40대를 불혹이라 했던가

by 직진언니


누가 40대를 불혹이라 했던가! 나는 40대를 불안 때문에 유혹에 흔들릴 수 없는 시기라 말하고 싶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소한 아이템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다. 예전엔 딱히 필요하지 않더라도 예쁘면 살까 말까 고민을 하기도 하고, 이미 나에게 맞는 화장품을 잘 쓰고 있다가도 마음을 현혹하는 엄청난 기능성 화장품의 광고를 보면 꼭 한 번씩은 사서 사용해 보고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가방, 옷, 예쁜 장신구와 장식품 등 현실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거나 실용성이 떨어지는 물건에 대한 구매 욕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난 스스로 물욕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단편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본 것이었다. 코로나 팬더믹을 겪으며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재정립되었다.


회사는 어려워지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엄청난 양의 업무가 쏟아졌다. 매일같이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과로사라는 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구나 두려울 지경이었지만 그놈의 월급이 절실했다. 아파트 대출금, 생활비 그 무엇 하나 나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쓰러지기 직전까지 버티며 그 시기를 견뎌냈다. 물론 아파트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이 싫거나 일을 정말로 그만둬야겠다 결심을 했다면 그냥 집을 팔고 얼마간 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조직생활을 하며 나에게 남은 것이라곤 집 한 채가 전부였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에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드라마를 보면 김낙수 부장도 상가 매매 사기를 당한 후 대출금을 갚을 방법이 없는 절체절명의 시기에도 회사를 다니며 어렵게 마련한 집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그것은 가족을 위한 일도 자신을 위한 일도 아니었으며 단지 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어쩌면 나도 내 인생의 노력으로 만든 하나뿐인 결과물이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도 힘겹게 출근을 하며 집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내가 집과 나를 동일시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가'가 주는 안정감이 다른 무엇보다 나를 지탱해 주는 뿌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비, 바람이 몰아쳐도 나는 자가가 주는 뿌리를 깊숙이 땅에 박고서 절대 쓰러지지 않으리라!


무섭다. 돈이 참 무섭다. 어떻게 나는 내 목숨보다 집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었을까.


코로나 팬더믹은 나의 인생철학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오늘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사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들은 금융 투자에 눈을 떴다. 나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그때부터 재테크라는 것에 온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나의 욕구는 사소한 옷이나 신발, 화장품과 같은 소비성 물건을 갖고 싶은 것에서 주식, 금, 가상화폐와 같은 자산의 소유욕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매월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은 미래를 위한 나의 투자 씨앗이 되었다. 그렇게 꾸준히 모은 나의 금융자산이 세포분열을 하듯 늘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세상 그 어떤 명품도, 외제차도 주지 못하는 뿌듯함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아파트 대출금도 모두 정리하고 금융자산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얼마나 가져야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방법으로는 독서가 최고다. 스노우 폭스로, 아니 그 이전부터 부자의 반열에 오른 김승호 회장님의 책을 선물 받아 읽어보았다.



결국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부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시골의 작은 집에 살아도 자기 집이 있고 비근로 소득이 동네 평균보다 높고 그 수입에 만족하면 이미 부자다.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의미는 두 가지다. 내 몸이 노동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도 수입이 나오고 내 정신과 생각이 자유로워서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한다. 즉, 육체와 정신 둘 다 자유를 얻은 사람이 부자다.
<돈의 속성> 김승호



내가 생각했던 부자의 정의와 매우 비슷하다.


"내 정신과 생각이 자유로워서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한다. 즉, 육체와 정신 둘 다 자유를 얻은 사람이 부자다."


이 부분은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앞단에 있는 노동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도 수입이 나오는 상태는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돈이 없어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정신이 자유로울 수 있다면 비록 노동이라는 것을 할지라도 결국 육체도 자유롭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상당한 자산을 축적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재배치하면 저자가 말한 노동에서 벗어나도 수입이 나오는 구조가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신이 자유롭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서울 상급지에 자가를 보유한 사람이고 싶은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에 정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육체는 회사에 매여있다. 소소한 아이템을 갖고 싶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물욕을 갖고 있다.


과연 이런 내가 부자라고 할 수 있는가. 저자가 말한 '시골의 작은 집에 살아도 자기 집이 있고 비근로 소득이 동네 평균보다 높고 그 수입에 만족하면' 즉, 정신과 육체가 자유롭고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 있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이 확장된 상태가 부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째서 그토록, 돈에 구애되는지요! 좋은 그림만 그리다 보면, 생활은 저절로 어떻게든 꾸려지는 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채로 가난하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습니다. 저는 돈이고 뭐고 원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멀고도 큰 프라이드를 지니고, 살그머니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여치> 다자이 오사무



1940년에 발표된 다자이 오사무의 '여치'는 작가가 이른바 '원고 장사꾼'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스스로 경계하는 의미에서 쓴 글이다. 마음속 속물근성을 훈계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헤어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글 속 여성은 소박하고 가난한 예술가와 결혼했으나, 남편의 작품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얻으면서 변해가는 남편의 속물근성에 배신감을 느끼며 이별을 고한다.


물질의 풍요에 매몰되어 인생의 철학도 겸손도 모두 잊은 그녀의 남편의 모습이 나에게서 티끌만큼이라도 보이지 않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자산의 증식만을 중심에 두고 주변에 인색하진 않았는지, 물질에만 매몰되어 삶의 진정한 가치를 구하는 일에 소홀이 하지 않았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아니 어쩌면 전 세계)을 볼 때마다 걱정스럽다. 물질의 풍요와 더불어 의식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신이 혼탁해져 사리분별을 못하고 세상이 엉망진창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나 또한 의식과 사고의 확정이 부족한 미천한 존재이나 스스로 온전하고 올곧은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중심을 잘 잡고자 독서에 빠져든다. 한 권의 책에서 단 한 문장만이 나의 마음을 건드려도, 그것이 나로 하여금 사유의 기회를 준다면 그 순간 나는 점점 더 부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도 나와 함께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돈의 속성> 김승호, <여치> 다자이 오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