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여 있고 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 를 향해
-- 70명의 야곱 가족이 애굽에 이주한 이후 그 시대의 사람이 다 죽고 그 자손들은 온 땅에 가득하게 번성합니다.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은 그 자손이 많고 강함을 두려워해 국고성을 짓는 무거운 짐을 지우지만, 학대할수록 더욱 퍼져나가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엄한 노동을 시키고 산파들에게 아들을 죽이게 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에게 하나님 은혜가 베풀어지고 백성은 더 강해지며 그들의 집은 흥왕합니다. 같은 풍요의 땅에서 사는데 그 땅의 본래 사람들보다 이스라엘 사람이 많고 강해진 것은 생육과 번성과 강함이 결국 하나님의 손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뜻합니다. 이제는 모든 백성에게 태어나는 아들을 나일강에 던지라 명령합니다.
바로는 지 딴에 지혜롭게 한다고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에 히브리인들이 대적과 합해 싸우고 나갈까봐 감독들을 위에 세우고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학대합니다. 사서 걱정하고 해가 될 일을 만드는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번성하고 퍼져 나가니 근심이 커집니다. 거기서 또 찾은 방법이 일을 더 엄하게 시키고 산파들에게 해산 시에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 합니다. 하지 않아도 될 근심을 하면서 자기를 괴롭히지만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시작한 일이 재물과 장자를 다 잃는 엄청난 쓰나미를 끌어옵니다.
내일은 우리 손 밖에 있습니다. 누구도 지난 일을 바꿀 수 없으며 내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 놈의 기억과 기대를 사느라 선물인 지금을 살지 못하면 그나마 있는 것까지 잃어버리는 내일이 바로 지금이 됩니다.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십니까?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염려하느라 오늘을 두려움으로 산다면 이 천하의 권세를 쥐었지만 벌벌 떨고 있는 바로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냥 지금만 사십시오. 설령 내일 하늘이 무너지면 예수님 뵈옵는 순간이니 그런 감사가 다시없다 자신하고 사십시오. 그런 오늘들로 채워진 인생이 바로 흥왕입니다.
산파들도 바로의 칼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더 컸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살리는 그들에게 불러서 가보면 이미 낳아 버린 후니 어쩔 수 없었다고 지혜로운 말을 주십니다. 하나님 백성을 살리니 그 집안이 흥왕 하는 복을 덤으로 받습니다. 무엇을 더 두려워하느냐는 무엇을 더 사랑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 함은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로 죄악을 누리기보다 그 백성으로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음을 보면(히11:25) 이것이 애굽에 사는 히브리인들의 일반적 기조였던 것 같습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바로의 명을 따르기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한 행동은 왕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흥왕하게 했습니다. 내가 나의 집을 번성케 할 수 있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와 내 집을 일어나게 해 주심이 나은 것을 분명히 믿는 사람은 설령 그것이 세상의 권위를 가져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매사를 하나님 경외함 여부로 선택합니다.
십브라와 브아는 그렇게 애굽 왕의 칼 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스라엘 아들들을 지켰고 하나님은 그 산파들의 생명을 지켰습니다. 애굽인에게 애굽의 아들들을 강에 던지라고는 안 했을 것이니 이제는 온 나라 사람이 아이 가진 히브리인을 감시하고 낳고 발각되면 강에 던져지는 처지가 되버린 최악의 상황에 반전의 한 수가 주어집니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고 정상 전 등반길이 가장 가파르듯이 정말 소망이 안 보이는 그 순간이 바로 빛이 비추일 전조라 믿고 오늘도 담담히 산파들처럼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