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난 중에 있는 것을 보고 듣고 아시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호렙의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 장로들과 바로에게 가 부르짖는 백성을 인도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라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시는 장면에는 불이 붙어도 타서 사라지지 않는 나무와 무슨 이유에선지 보고서는 지나갔다가 다시 보려고 돌이켜 가는 모세와 가서는 또 뵈옵기 두려워 얼굴을 가린 모세, 그리고 그런 모세를 가까이 오지는 말라 하시면서 그 선 곳이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하시는 하나님 지시까지 등 몇 가지 특이점이 있습니다.
불붙으면 타서 재가 되어야 하는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나무로서의 가치가 없는 쓸모없는 떨기나무처럼 미디안의 목동에 불과한 모세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타서 사라지지 않고 그 분의 쓰임 받아 사용될 것을 나타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에 대해 불 붙어도 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하나님 함께 있어 주시는 자라 답해 주시는 상징적이고 강력한 시각적 효과입니다. 불에 태워져 숯덩이가 되어야 할 떨기나무처럼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있는 우리 인생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 심판을 면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죽을 인생이 은혜로 죽지 않는 자리가 거룩한 자리이고 거기서 신을 벗으라 하심은 내가 믿고 살아온 하나님 없는 생각과 방법을 버리라 하심입니다. 신을 벗어 곧 내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고 거룩한 하나님 가까이 가는 것은 곧 죽음이기에 신을 벗는 것으로 죄 된 나를 먼저 부인하고 나타나신 그 앞에 서도록 하시는 더 큰 은혜이고 자비입니다.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의 산에서도 먼저 지나갔다가 큰 광경을 보려고 돌이켜 오고 하나님은 그냥 봐 주십니다. 모세는 타는데 사라지지 않는 나무가 궁금하여 오지만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그 모습 그대로 보십니다. 우리는 이해와 상식을 넘어서는 이적에야 겨우 돌이켜 가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라도 그 자체로 보시지 나의 어떤 행동이나 성취나 경이로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거인 이적보다 하나님 그 자체를 주목하기가 쉽지는 않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시니 우리도 하나님을 그렇게 뵐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으로 불가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말씀에 사로잡혀 기도 중에 있는 때뿐 입니다. 매일 우리가 내 발 딛고 선 여기가 하나님 계신 거룩한 곳이니 지금 신을 벗어 그 앞에 거룩하게 서기를 해 보는 것이 바로 순례이고 삶입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물어 자신의 정체성과 낮아진 자존감을 표출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분명한 이름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모세도 건져냄이라는 자기 이름에 맞는 정체성이 있었는데 그것이 미디안의 오랜 삶에 찌들어 오늘 큰 광경을 보면서도 그의 지시하심에 거절의사를 밝히는 꼬락서니로 찌들어 들어버립니다. 불붙었으나 타지 않고 사라지지 않음으로 내가 보내고 내가 인도하여 내게 하신다는데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하며 자신의 떨기나무 같음만 토로합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면 그 하심에 나를 보내 주시니 감사하고 신나하면 그만인 것을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하나님이 하신다 하시잖아요?
사람은 삶의 무게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더 무겁게 삶을 짓누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계신 분이 그 모양과 형상대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그리고 가장 소중한 당신의 독생자를 피 흘려 죽게 해 거듭나게 하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거기 함몰되어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될 충분한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다 함은 그가 어떤 것에도 의존되지 않았다 함과 동시에 스스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신을 벗는 곧 자기를 부인함으로 거룩한 땅 그 앞에 섰다면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 들린다면 당신은 이미 불 붙었으나 타거나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 함께 하시는 존재입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와 관계가 확증되면 생명을 주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이유 즉 사명, 할 일과 그 구체적 방법이 주어집니다. 모세는 자기를 죽이려는 바로가 있는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그 백성들을 압제에서 끌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돌아갈 사명의 애굽은 어디이고 맞닥뜨려 맞장 떠야 할 바로는 누구입니까? 바로에게 가기 전 동족의 장로들에게 갑니다. 바로의 허락을 구했는데 막상 백성들이 안 가겠다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험하고 고된 광야 여정에서 떠난 것을 후회하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적을 치는 게 먼저가 아니라 내 편을 정비하는 게 먼저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애굽을 떠나야 할 때 당신을 도울 동족은 누구이고 그와 어떻게 협력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