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못한다 주저하는 모세에게 이적과 지팡이와 증거와 아론을 주고 붙이고 입에 같이 있어 가르치실 것이니 장자가 죽기까지 보내지 않으려는 바로에게 가라 하십니다. 여호와께 죽을 뻔한 길에서 아들의 포피를 베어 놓임 받고 백성들에게 전해 경배케 합니다.
나는 본래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본래 말을 잘 못하니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는 모세의 투정은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능력과 손이 아니라 자기의 말 잘하는 능력과 힘으로 된다고 여기는 걸까요? 두려워서 가기 싫은 걸까요? 아니면 40년 전 애굽인을 쳐 죽이고 도망하여 자기의 힘으로 되지 않음을 경험했음에도 이것이 하나님 일이 아니라 내 힘으로 해내야 하는 내 일이라 여기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나를 통하여 하신다 할 때 나는 그것이 아골 골짝 빈들에 가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이 하시니 써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여 선선히 갑니다 합니까 아니면 이 하라 하신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지금 있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따지고 있습니까? 충분한 전력과 총알이 없는 전쟁에 나가라 하시는 것 같지만 실은 넉넉히 이길 여러 가지를 손에 쥐어 주신 것들을 보는 대신에 내가 부족하고 할 수 없는 것들만 주목하니 자꾸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디로 가라 하시고 무엇을 쥐어 주셨습니까?
초태생 전부를 죽여 출애굽의 정점을 찍는 계획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장자이고 장자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본분이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도 그 순간에 다 죽었지만 살려 두신 것은 이후의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장자는 그 새 생명으로 하나님 섬기는 삶만 살라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장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서 또는 하나님과 다른 것을 같이 섬기면서 영적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장자라 함은 죄이고 죽음 입니다. 되살아난 이스라엘 즉 모든 영적 장자들은 오로지 하나 하나님 섬기는 것에 드려져 삶의 모든 것들이 그 기준으로 정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 보다 더 우선이고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에 분명한 눈이 뜨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눈이 뜨이면 구속 곧 그리스도 예수님 하나만 보이고 다른 모든 것은 그것을 기점으로 하위 정열 됩니다. 그렇습니까? 아니라면 죽음을 유월하고 연장된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길의 숙소에 나타나 결국 순종하여 사명의 애굽으로 가고 있는 모세를 하나님이 왜 죽이려 하신 걸까요? 미디안에서 태어난 게르솜과 엘리에셀은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 명하신 할례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편한 명령과 규례에 먼저 순종하지 않고 사명의 큰 자리로 나아가는 모세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작은 것에도 먼저 철저한 따름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면서 사느라 바빠서 잃어버린 언약이 있습니다. 죽음으로 위협 받는 고난은 다시 일깨우시는 은혜입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신속히 아들의 포피를 베어 전적으로 순종할 준비가 되었음을 드러내고 놓임 받게 합니다. 당신에게 작아 보이지만 정확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십보라의 역할을 합니까? 십보라가 필요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