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온전한]
보르네오 납작 머리 개구리

by 정민정

저는 수학을 참 못합니다.

피아노 유치원에 다녔지만 계이름만 겨우 기억하는 정도이고요.

철봉에 매달리는 것은 제가 가장 못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정도로 못하는 것이 많지만, 잘하는 일도 몇 개 있습니다.

인체에 있는 각종 소화효소의 이름, 호르몬이 만들어지고 분비되는 위치 같은 것 들은 참 잘 외우고요.

그림을 곧잘 따라 그리기도 하고, 의외로 유연해서 다리 찢기는 쉽게 해냅니다.

기분이 무지 좋을 때 하는 풍차돌기는 제 친구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개인기 중 하나죠.


나에게도 잘난 점이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고, 나도 모르는 사실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 마음에 와닿기까지는 꼭 특별한 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때로는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해보기도 하고, 그룹 안에서 노력을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 언제나 존재합니다.

심지어,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타인의 ‘잘남’에 상처받기도 하지요.

타인의 잘남이 나에게 상처가 된다니! 왠지 내가 더욱 찌질하고, 한심해 보여 한 번 더 절망하게 됩니다.


하루는 학회에서 다른 학생분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운 훌륭한 발표였지만, 어째서인지 제 마음은 계속 불편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가까운 박사님께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도 분명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저는 항상 뒤처져 있을까요?”

또 다른 하루,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난 어떤 날에는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자신감이 넘치지 못할까?’ 하고 풀이 죽었고,

성적표를 받고는 만점을 받지 못한 것이 아쉽고, 그때 더 정독하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심지어, 내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뭐든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치열했지만, 항상 아쉬웠던 것을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는 보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을 왜 가지지 못했냐고 불평하고,

심지어는 그런 자신을 '한심하다' 라며 타박까지 주는 사람이었다는 것 을요.


보르네오 납작 머리 개구리를 내 인생의 스승으로 모셨어야 하는데!


주로 폐를 이용한 호흡을 하는 인간과 다르게, 개구리는 폐의 구조가 간단하고 기능이 온전치 못해 폐만으로 호흡하지 못합니다. 올챙이 적에는 아가미로 호흡을 하다가, 개구리가 되며 폐가 발달하는 구조를 갖고 있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호흡이란 생물에게 매우 중요한 생명 활동입니다. 호흡이란 공기를 들이마셔 그 속에 있는 산소를 내 몸에 전달하고, 물질대사를 통해 나온 산물인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폐호흡에 의존하는데, 전체 호흡의 극히 일부분, 1%도 안 되는 비율로 피부 호흡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개구리는 폐호흡과 피부 호흡, 두 방법을 모두 통해 호흡하고, 그 둘 중 하나라도 못 하게 되면 질식의 위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던 2008년의 어느 날, 싱가포르의 한 생물학자가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에서 폐가 없는, 피부로만 호흡하는 개구리를 발견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납작한 머리를 가진', '보르네오에서 발견된', '개구리'로 보르네오 납작 머리 개구리(Bornean Flat-headed Frog)(학명:Barbourula kalimantanensis)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개구리들이 물속에서 지내는 습성, 서식 지역이 고산지대라는 특성 등으로 인해 폐가 퇴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15년이 지난 2024년의 연구에서 고해상도 마이크로 CT 스캔을 통해 (연구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주, 아주 작은', '어떤 기능을 한다고 말하기엔 회의적인' 폐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보르네오 납작 머리 개구리가 '폐를 이용하여 호흡한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내가 이 납작 머리 개구리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른 개구리들은 다 평범한 폐를 갖고 있는데, 왜 나는 보잘것없는 폐를 갖고 있을까?

다른 개구리들은 피부 호흡으로 부족한 산소는 폐호흡으로 충족하던데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부족한 흙수저 개구리이고,

다른 개구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금수저 개구리인 걸까?

아니, 왜 머리는 또 납작- 평평- 하냐고요!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부 호흡이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면

‘아 나도 폐가 있었으면 더 쉽게 호흡했을 텐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폐가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숨쉬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씩씩한 납작 머리 개구리에 힘을 얻어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내게 있는 것'을 떠올려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겁이 많이 없어.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금방 잘 따라 해. 나는 꼼꼼하고, 섬세하게 조작하는 일을 잘해. 그렇게 나열하다 보니 남들이 보면 ‘와 저 사람은 저런 특성을 타고났나 보다’ 할만한 일들이 제게도 참 많았습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야 저는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노력 없이 무언가를 훌쩍 잘 해내지는 못한다는 것’을요.

나도 무엇 하나 쉬이 얻은 적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재능과 성품은 그냥 타고났다고, 노력 없이 쉽게 얻었다고 생각했구나.

내가 오만했구나.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을 보며 ‘영어 잘해서 좋겠다’라고만 생각했지 그 사람이 이민자로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애쓴 시간, 심지어 한국어와 영어 모두 잘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받았을 스트레스는 생각할 생각도 않았던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는 것은 나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영어를 말했고, 더 많은 단어를 외웠기 때문인데 그것은 모른 체하고 그저 부러워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의 훌륭함은 나에게 큰 벽처럼 느껴집니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그 너머에는 언제나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 있어서,

마치 태어나기를 반짝거리며 태어난 것처럼 쉬워 보여서

답답하고 무기력해질 때가 있죠.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어느 감동 스토리 마냥 그 벽을 디딤돌로 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노력을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추앙하듯 당신의 노력도 인정해 주세요.

나도 열심히 한 것은 맞잖아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을 살 듯, 나는 나로서 온전하게 살아가면

그것도 무지하게 대단한 일 이니까요.


아직까지 보르네오 납작 머리 개구리에게 어떠한 선택압과 유전학적 기전이 관여했는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납작 머리 개구리는 물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며 폐가 없는 대신, 물에 들어가서 더 많은 산소를 얻을 수 있게 수중 생활을 하였고, 그 결과 산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도록, 빠른 물살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납작한 머리를 가졌을 것이라 예측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좌절하는 대신, 내가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추고, 나에게 최선의 것을 제공하려 노력한 결과입니다. 아마 보르네오 납작 머리 개구리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을 힘이 이끌어낸 결과 일 것입니다.


너무 벅찬 일에 포기하고 싶어질 때 에는

겨우 7cm 정도 크기의 보르네오 납작 머리 개구리가 물살을 견디는

그 귀여우면서도 대견한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상상 속의 개구리가 당신께 용기가 되어주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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