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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tine Jun 20. 2023

남편이 뭘 한다구요?

미국 산부인과 분만일기 4


산모의 3대 굴욕이라는 말이 있다. 3대 굴욕이란, 한국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위해 으레 하는 제모, 관장, 내진을 뜻하는 조크 겸 용어이다. 내진이야 사실 분만을 위한 진료이니,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미국 산부인과에서는 제모를 권하지 않고, 관장 또한 필수과정으로 제안하지 않는다. 산모가 먼저 원하는 경우엔 어떨지 모르나, 내 기억속 미국 산부인과라면 “관장? 굳이 그런걸 왜 해?” 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 뻔하다. 사실 분만시 생길 수 있는 조직 손상을 막기 위한 ‘회음부 절개’도 한국 산부인과에서는, 자연분만을 위해서 꼭 해야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임신내내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으로부터 ‘회음부 절개’ 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분만 당일이 되어서야, 혹시 나 회음부 절개 해야하니? 라고 물어봤을 때 역시나 “굳이 안해도 될 것 같아” 라는 답만 들었다. 


 관장을 하지 않아 분만 시에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도, 미국 병원의 간호사들은 매우 프로페셔널하게 나의 사고를 수습해주며, 제모는 해야할 이유도 찾지 못한 것 같고, 회음부 절개까지 안하니 의도치 않게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물론 무통 만세)


 그렇지만 이 모든 굴욕을 제외하고, 내 분만과정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남편의 역할” 이었다. 우리 남편의 역할은 무려, 좀 더 쉬운 분만을 위한 자세를 잡으려 흑인 간호사선생님이 내 왼쪽 다리를 잡아주시는 동안, 내 오른쪽 허벅지를 잡아주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유명한 미국인 유튜버 올리버쌤의 와이프인 마님의 인스타 계정에도 이런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에피소드를 봤을 때 임신상태 였기 때문에 주변에서 “너도 이렇게 할꺼야? 남편보고 너 다리 잡고 있으라고?” 라는 질문을 어마무시하게 많이 받았다. “아니, 나는 무조건 내 얼굴 옆에만 있으라고 할꺼야!” 내 대답은 꽤나 단호했다.


 출산과정을 본 남편은 그 직후 성욕이 사라지고, 더 이상 아내를 여자로 볼 수 없다는 인터넷 괴담이 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건강한 출산보다도, “혹시나 남편이 출산과정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면 어떡하지” 에 대한 불안함을 임신 내내 더 크게 느낀 적도 종종 있었다. 주변의 몇 없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산모들에게 직접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그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하게 되더라. 그치만 최대한 보지 말라고 했어”


 오랜 기다림 끝에, 나의 분만과정이 시작됐던 아침. 예상대로 의사는 직설적으로 나의 남편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Hold your wife’s right leg”. 나는 떨리는 마음을 잠시 거두고 잽싸게 말했다. 나는 남편이 나의 출산과정을 보지 않고, 그저 내 얼굴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물론 이런 산모의 요청을 백분 반영해주고 이해해주는 의사도 있겠지만, 나의 담당의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아름다운 과정이야 걱정마. 그렇게나 원한다면 보고 있지는 마. 그래도 다리는 잡고 있도록 해” 내 남편의 대답 “No problem, I will try my best”


 그런데 막상 해보니, 점점 체력도 안 따라주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서 남편이 나의 출산과정에 어느 정도 개입이 되어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꽤나 힘이 되었다. 남편은 한 팔로는 나의 한쪽 다리를 잡고, 한쪽 손으론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내가 push 할 때마다, 지금 push 는 힘이 조금 약했던 것 같다던지, 지금 push 는 적절했었는지 등을 코치해주기도 했다. (물론 이때 남편이 그저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산모들도 많겠지만, 나에겐 꽤나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그저 보면서 응원만 하기보단, 이제 정말 한 배를 탔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출산이었다.


 약 한시간 반 정도의 push 후, 우리는 우렁차게 우는 튼튼이를 만났다. 처음엔 무려 열달이나 품었지만 실제로 보는건 처음이라 너무 신기해서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세상이 궁금한지, 태어나자말자 똥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우리의 아기와 눈을 맞춰보고, 내 품안에 처음 안고 있던 그 순간은 지금도 눈물이 날 만큼 감격이다. 조그맣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3.08kg 의 따뜻한 나의 아기에게 첫 수유를 시도하고, skin to skin (아기가 태어나자말자 엄마의 몸에 붙어 안겨있는 스킨십) 을 무려 한 시간 정도 하면서 충분히 아기와 교감했다. 


걱정했지만 훌륭했던 출산 보조이자, 육아 동지, 인생의 동반자와 나는 그렇게 드디어 “부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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