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참아도 드러내도 힘든 나에게,

정서표현양가성: 마음의 돌멩이 2개

by 틈새


환풍기 소리가 큰 걸까, 아니면 내 마음의 잡음이 큰 걸까. 피 냄새가 비릿한 걸까, 아니면 내 기분이 비릿한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적함이 몰려오는 날이 있더라. 환풍기에서 나는 위잉-위잉 소리가 유독 거슬리고, 잠결에 시작된 월경(정혈)으로 속옷을 빨며 맡은 비릿한 냄새가 유독 불쾌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문득 DSM-5에서 언급되는 월경(정혈) 전 불쾌감 장애 때문인가 싶었지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어. 내가 이렇게 집요하게 이유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울적함 때문이 아냐. 그보다는, 울적함의 이유를 모르는 사실 자체가 나를 더 벙찌게 하기 때문이야. 사실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지만, 너무 사소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몰라


어제 풋살 경기에서 골을 몇 개 넣고 나름 뿌듯했지만, 차 안에서의 대화가 왠지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했어. 하나는 서로 다른 정보들 사이에서 내가 침묵을 택해야 했던 순간,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속상한 이야기에 내가 대신 흥분해 버려 다른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 순간이었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별일 아닌 일’을 곱씹는 악취미를 가진 게 문제였지.


나는 관계 속에서 침묵을 해도, 자유롭게 표현해도 불편했어. 그 불편함은 어제의 사소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평생을 따라다니는 문제, 바로 *정서표현양가성에서 비롯된 것같았어. (*정서표현양가성이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욕구와 억제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감정을 드러낼 용기도, 억누를 여유도 부족해. 자기표현과 자기 억제 사이에서 나의 감정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흔들렸고, 그 갈등은 체증처럼 나를 짓눌렀지.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쫓는 헛젓가락질 같더라고. 이 갈등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 했어. 나는 매일같이 그 불편함을 안고 스스로를 마주했지.


감정을 숨기며 점잖음을 유지하려는 나와, 모든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대범한 나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삶의 고통은 대개 이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과 관련이 깊었다.


이 놈의 울적함을 잊어보려, 새해 첫날이라는 상징성에 묘한 책임감을 느끼며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어. 그러나 이런 낙관도 오래가지 못했지. 새해 첫날부터 엄마와의 갈등이 불쑥 찾아왔기 때문이야.


엄마와의 싸움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어. 이유는 사소했지.새해 첫날, 엄마는 산에 가지 않는 나와 본인을 가리켜 장난스럽게 “게으르다”라고 말했어. 그러나 그 말에 나는 기분이 상했어. 게으름을 벗어나기 위해 늘 숨 가쁘게 달려왔던 나 자신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야. 엄마는 내반응에 화를 내셨고, 갑작스레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셨어. 나는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고,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 동시에 엄마가 나를 위해늘 해주던 것들에 내가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닐까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더라고. 서로의 마음의 얼룩 대신 그릇의 얼룩이라도 닦자는 마음으로 설거지를 했어. 그러면서 내 울적함의 또 다른 단서를 떠올렸어. 어쩌면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여겼기에 엄마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건 아닐까? 마음 속에 깊게 자리 잡은 자기 비난과 감정 억제를 마주해야만 하는구나 싶었지.


풋살에서 느낀 미묘한 감정, 엄마와의 갈등, 그리고 일상에서 반복되는 이 불편함은 결국 내 정서표현양가성의 산물이었어. 엄마와의 갈등에서, 나는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고 억누르거나 과잉 표현하는 모순된 방식으로 반응했어. 엄마의 장난스러운 말에 기분이 상한 뒤, 그것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방어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이처럼 감정을 숨기려는 마음과 그것을 표출하려는 마음이 충돌하는 순간이 바로 정서표현양가성의 전형적인 사례였지. 그리고 이 문제의 핵심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이미 내가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었어. 타인이 나를 비난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내가 스스로를 먼저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인가봐.


정서표현양가성의 고민을 안은 채 나름 해결책이랍시고 솔직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그런데 결국 그게 엄마와의 1.1 대첩으로 이어졌지. 그제야 든 생각은 솔직함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야. 솔직함은 어설픈 단면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깊이를 드러내지는 못하잖아.


솔직함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고, 진솔함은그 속에 담긴 진심을 전하는 것이다. 솔직은 때때로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진솔은 그 안에 깊이와 울림을 남긴다.


나는 이제 솔직함을 넘어 진솔함으로 나를 마주하고,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로 했어.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늘 두 개의돌멩이가 서로 싸우고 있지만, 그 돌멩이를 삼킬 수 있는 방법은 그 싸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고 변화하는 과정을 기다리는 것 뿐인걸 이제 알아. 마치 풍화작용처럼, 내 안의 갈등도 서서히 풀어지며, 어느 순간 그 돌멩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야.


솔직함이 관계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면, 진솔함은 그 관계를 단단히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줄거야. 새해의 시작과 함께 나는 그 다리를 놓아보려 해. 진솔한 나를 통해 억압과 방어의 무게를 내려놓고, 내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길 소망해. 솔직함이 서투른 표현이라면, 진솔함은 그 표현의 서투름 이면의 의미가 되어줄거야. 분명히.


마음의 돌멩이 2개의 풍화작용을 기대하는 나로부터,


P.S. 해가 바뀌어도 달라진 게 전혀 없는 내가,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진 것 밖에 없는 것 같은 내가 싫어서인지 뭔지아침마다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아. 정서표현에만 양가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냐. 기간제 교사냐 사기업 전향이냐 이런 양가성도 문제야. 택 1의 문제처럼 느껴지는데 도무지 선택을 못하겠으니까. 그러나 이 또한 마음처럼 시간이 필요한 일인 걸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면서 선택의 중요성만을 중시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버텨내는 것 아닐까. 늘 연초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던 나인데, 올해는 세우지 않았어. 대신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고, 그 여백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려 해. 우리의 양가성은 그런 자유와 여유 속에서만 유영할 수 있고, 그래야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야. 아 그리고늦었지만,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