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위성의 횡포: 내 인생에는 윤기가 없다
그동안 내 인생에는 윤기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수영을 마친 뒤, 머릿속에 떠오른 오마주 문장이었어. 사실 수영을 하면서는 양귀자님의 소설 모순에 나오는 한 문장을 곱씹고 있었거듣. “인생에 양감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장은 선명하게 남아 있더라고. 아마도 최근 인생에 대한 허무감에 휩싸여 있었기에, 그 문장이 내 삶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같아. 한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허전함이 그 문장 속에 비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 문장은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 아마도 그것은 한 할머니와의 짧은 대화 덕분이었던 것 같아.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수영을 마치고 머리를 말리던 중이었어. 그때 옆에 있던 할머니가 나를 향해 한마디 하셨지.
“외투를 입고 말리니까 잘 안 마르지!”
할머니는 떼잉, 쯧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어. 예전 같았으면 화가 났을 상황이었지. 나는 세상에서 간섭과 참견, 그리고 배려 없는 말투를 가장 싫어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어. 정말 이상하게도, 아주 신기하게도. 나는 할머니의 의견을 수용해 외투를 살짝 벗고 머리를 다시 말렸어. 확실히 조금 더 잘 말려지는 것 같았어. 이에 웃으며 나는 말했지.
“너무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그랬는데, 외투를 벗으니까 더 잘 마르네요?”
잠시 당황하시던 할머니는 “대체 얼마나 급했으면 그러냐”며 웃어넘기셨어. 대화는 그렇게 짧게 끝났어.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 순간을 계속 곱씹었어. 내 태도의 변화에 스스로 놀랐기 때문이야. 예전의 나였다면 겉으로는 멋쩍게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한바탕 욕을 퍼부었을 것이야.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 나는 할머니의 말에 웃음으로 답했고, 내 마음도 가벼웠워. 몰랐어 그동안은 정말. 내가 그렇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그리고 그런 태도로 사는 것이 훨씬 삶을 수월하게 만든다는 것을.
내게 사고의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게 인생의 윤기라는 것은 몰랐지만.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당위성의 횡포[Tyranny of Shoulds]에 휘둘리며 살고 있었던 거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유연한 태도 대신,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사고가 나를 사로잡았어. 예를 들어, 세상은 반드시 공평해야 하고, 사람은 늘 친절해야만 한다는 식의 당위적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어. 겉보기에는 그저 완벽주의자나 원칙주의자 성향이 조금 있는 정도로만 보였지만, 그 내면에는 꾹꾹 눌러 담긴 분노와 우울이 가득했지. (*당위성의 횡포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고통을 초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을 보인다고 해. 하지만 나는 그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 빳빳한 작대기로 태어난 내가 갑자기 유연한 용수철처럼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윤기라는 단어를 떠올렸어. 내 존재 자체는 문제없다. 다만 내 삶이 너무 퍼석할 뿐이야. 나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퍼석함에 윤기를 칠하는 일은 해볼 만하지 않을까.
최근 면접 스터디를 하면서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어. 나는 근래에까지도 스터디 내에서 말을 툭툭 던지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어. 처음에는 스터디 자체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지만, 괜한 책임감에 그렇게 하지 못했지. 그런데 어느새 그 사람의 화법에 적응한 나를 발견했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게 불편함을 주는 이들의 큰 공통점은 바로 무표정이었어. 내게는 미소가 예의였지만,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야.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 미소가 예의일 수도 있지만, 미소의 부재가 반드시 무례는 아니니까. 그걸 인정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어.
결국 삶이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공부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비워지고 채워지며, 윤기라는 게 더해지는 게 아닐까.
집으로 오는 길, 길가에서 나물을 사려는 한 손님의 사나운 말이 내 귀에 꽂혔어.
“계산으로 장난칠 생각 말고 똑바로 주쇼.”
어디서 크게 데인 적이 있으신가 싶었어. 그렇다고 그런 과거가 있다고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인데, 왜 저러나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 속으로 자칫하면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나물을 팔고 계시는 아주머니의 대답을 기다렸어.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웃음을 머금으며 침착하게 대답했어.
“하하. 장난칠 생각 없이 똑바로 계산해서 드릴게요.”
굉장히 훌륭한 장사 수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말투와 미소가 묘하게 윤기 나는 삶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어. 자주 하고 싶은 게 없던 나는 종종 ‘이게 우울인 걸까?’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었지. 그런데 오랜만에 하고 싶은 게 생겼어. 퍼석한 내 인생에 윤기를 채우고 싶어졌어.
삶에 윤기를 더하면서 나아가고 싶은 나로부터.
P.S. 대학원을 졸업해도 막막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현실의 취업 시장은 그보다 더 어려웠어. 이력서를 쓸 때마다 부족한 스펙을 채우기 위해 나를 꾸며야 할 것만 같았고, 그 과정은 마치 나 자신을 속이는 일처럼 느껴졌거든. 마음이 무거웠어. 하지만 이력서를 작성하며 한 가지를 깨달았어. 눈에 띄는 경력이나 성과는 부족할지 몰라도, 꾸준히 해온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나는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당위에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 답답함 속에서 시작한 것이 수영이었어. 물속에서는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있잖아. 투명한 푸른빛, 나를 감싸는 물길, 그리고 울어도 나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눈물. 물속에서 나는 당위의 횡포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자유를 느낄 수 있었어.
경력의 부재로 인해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번번이 서류 탈락의 쓴맛을 보던 내게 기회가 찾아왔어. 학교 상담사 면접이었고 덜컥 합격했어. 계약 기간은 1-2년, 길지 않은 시간이었어. 하지만 그마저도 내게는 소중했어. 부족한 경력을 이유로 나를 믿지 못했던 건 면접관들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기도 했기에.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려다가도, 세상이 나를 몰아세운다 해도, 적어도 나는 나에게 당근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 먹었어. 수영 속에서 느꼈던 그 자유처럼, 나를 다독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졌어. 그렇게 나도 윤기 나는 삶의 한 장면을 살아내 보고 싶어 졌어. 나를 조금 더 믿고, 조금 더 용기 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