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모호함에 대한 내성: 어느 날, 구름이 사라진다 해도(In love)

by 틈새
나를 사랑해야 한다. 이 지독히 지겨운 말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저 스스로을 혐오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길 바랐어. 거울 속 내 모습조차 보기 힘들 만큼 스스로를 미워하는 게자연스러운데, 어떻게 사랑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 건,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사람들 때문이었지. 자존감이 낮지만 높은 척하는 어떤 사람들은 자신처럼 자존감 낮은 사람들을 자신의 희생양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특히 한 남자가 기억나. 그와의 첫 만남에서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어. 당시 자존감이 낮아 보이는 듯한 말들을 딱히 숨길 생각 없이자주 했던 내게 그는 이런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게 참 가관이었어.


“네가 하는 말은 너 자신이 가장 많이 듣는 거야.”


그럴싸한 조언이었지만, 그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거든. 그는 조금이라도 자신이 공격당했다 싶으면 남을 깎아내리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예술병 말기 작곡가였기에. 꼭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 멋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았어. 자칫하면 그의 희생양이 될 뻔했지만, 아주 다행히도 그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어.


사람을 디테일로 판단하는 나의 나쁜 버릇에 처음 감사를 느꼈어.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외제차, 자신의 욕망이 담긴 듯한 항아리형의 몸매, 그리고 그냥 거슬리던 클러치백과 맨발 로퍼까지. 이 모든 디테일이 나를 스스로 방어하게 만들었다니까.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배운 한 가지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존감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 설령 언급하더라도, 이렇게 답했더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런 깨달음을 얻고도, 나는 연애라는 세계로 좀처럼 발을 들여놓지 못했어. 연애를 통해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가끔은 나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에 속아보고 싶기도 했거든? 근데 나를 둘러싼 관계들은 항상 나를 지치게만 하는 것 같았어. 점점 관계를 맺으며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두려워졌어. 나는 변수를 줄여 편안함을 느끼는 방식으로 내 두려움을 감추고자 연애라는 키워드를 어느새 삶에서 배척하고 있었어.


그랬던 내게 변수 같지 않은 변수, Y가 나타났어. 평온하고 덤덤한, 자존감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답했던 그 사내. 흔히들 말하는 한 인물에게만 빛이 나는 듯한 현상은 전혀 없었지만, 그 간의 결심이 무색하게 어느새 나는 그와 사귀고 있었어. 세상에, 사귀는 게 이렇게 쉬웠다니!


사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두 가지 이상형 조건을 나름대로 설정해 둔 적이 있었어. 이상형의 조건이 선택과 배제라는 폭력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를 고집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기준 없이 관계를 맺는 것이 혼란으로 자꾸 이어지는 것 같아 나름의 기준을 세운 것이었어.


아빠의 키(중년 남성 평균)보다는 커야 한다.

이목구비는 흐릿해도, 피부는 멀쩡해야 한다.


친구들은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남자가 남자의 반 이상이라고 했지만 Y는 반 이하의 인물(?)이었어. 인생에 딱히 불만 없는 Y의 유일한 콤플렉스는 키였고, 피부 트러블이 너무 심해서 얼굴도 만지게 못하게 했어. 피부 덧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게 좋았어. 우리가 하는 게 괜히 더 사랑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이전의 모든 관계는 늘 마침표로 끝나거나 공백으로 이어졌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쉼표 뒤를 기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쉼표가 주는 모호함. 그동안 내가 놓쳤던 사랑의 본질이었다.


진부해서 차마 쓰기 싫었던 표현이지만,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사랑이 내게 온 거지? 싶었어. 감탄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이유가 궁금했어.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은 의외의 사건들 속에 마치 비밀처럼 감춰져 있었어.


그 사건들은 모두 나의 좌절 경험과 관련돼. 첫째는 엄마의항암 치료, 둘째는 아빠의 사업 실패, 셋째는 나의 취업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던 나는 딱 2가지 기도만 주기적으로 하곤 했어. ‘부모님이 암에 걸리지 않게 해 주세요. 사업 실패로 집에 빨간딱지 떼지 않게 해 주세요.’ 미디어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기도 내용이었는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기도의 반대로 모든 것이 이뤄졌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넘쳐나던 상담교사 티오가 내가 시험을 보는 해에 급격히 줄어들었고, 티오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건강을 해칠 정도로 커져 있었어. 그제야 뻔하면서도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어.


’ 삶에서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간절하면 뜻대로 되는 게 조금은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인생이란, 100개 중 1개를 원하면 99개는 되고 그 1개는 안 되는, 수월하면서도 가혹한 게임이었어.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는 것뿐이지, 내 뜻과 무관하게, 될 일들은 되기 마련이었지. 이처럼 세 번의 좌절은 나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마음의 힘을 빼는 법을 가르쳐주었어. 그리고 마음의 힘을 빼는 하루들 속에서 Y는 사랑을 재촉하는 법이 없었지. Y에 대해 누가 물을 때면, 그를 이렇게 소개했어.


절대적인 유해함으로 가득한 내 삶에, 버젓이 등장한 상대적으로 무해한 존재. 그는 마음에 힘이 잔뜩 들어간 다른 사내들과는 달리 마음의 힘을 뺄 줄 아는 그런 귀한 사내였다. 미처 몰랐다.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동안에 겪은 좌절은 늘 내게 무력으로 다가왔기에, 당연히 무력이 올 줄 알았어. 그런데 이 시점에서 '어 왔어?'싶은 무력이 아니라, '네가 여기서 왜 나와?'싶은 용기라니. 사랑이라니. *모호함에 대한 내성과 용기 그리고 사랑은 세트였던거야. (*모호함에 대한 내성[Tolerance for ambiguity]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불안에 압도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그 모호함을 수용하며 대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삶은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아. 하지만 마음의 힘을 빼고쉼표를 찍을 줄 알게 되니, 모호함을 견딜 수 있었어. 그리고 그 모호함 속에서 용기를 내어 더 많은 것을 사랑할 힘이 생겨나는거더라고. 변화는 특히 나와 나의 관계에서 깊이 작용했어. 마음 한구석에 쉼표가 자리 잡으니, 쫓기듯 달리던 내게 잠시멈출 여유를 허락할 수 있었어. 그렇게 길러진 모호함에 대한 내성은 불안을 직면할 용기로 이어졌고, 마침내 나 자신에 대한 뿌리 깊은 사랑으로 나를 이끌었지.아, 정말 즐겁다. 그런 생각이 오랜만에 들더라. 그제야 Y가 이따금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던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어.


“사는 건 왜 이렇게 재밌을까? 사랑을 시작했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는 그 느낌! 그런 다양한 삶의 기쁨들! 내 미래의 자식들에게도 그런 기쁨을 꼭 알려주고 싶어.”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늘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어. 사랑을하면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 든다는 그런 뉘앙스의 뻔하고유치한 말을 내게 하고 싶은 걸까 싶어서.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랑은 제법 덩치가 컸어. 너에 대한 사랑, 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까지 모두 한 세트였으니까. 그 사랑이 하나로 연결될 때 비로소 사람들이 말하던, 구름을 걷는 듯한 사랑이라는 개념이 이해되었어. 그래서 그렇게들 사랑 ‘따위’에 삶을 걸곤 했던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만약 그 구름이 사라진다 해도 여전히 괜찮을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면, 사랑은 더 이상 ‘따위’라는 접속사에 얽매이지 않고 그 자체로 완전해지는 것이겠지. 비로소 사랑의 덩치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은 정말이지 예기치 못한 때에 찾아오더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일 줄 알았는데, 사랑에 대한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에 찾아왔거든. 자신을 사랑하기가 어렵다면, 그건 사랑에 대한 깊은 오해가 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아. 오히려 이는 희소식일지도 몰라. 오해만 풀면 되는 거니까.



사랑의 덩치를 배워가고 있는 나로부터.


P.S. 사랑이 궁할수록 연애 예능이 판친다고들 한대. 짧은 설렘과 극적인 갈등만이 반복되는 화면 속 사랑은 흥미롭고 자극적일 수 있지만, 나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사랑의 본질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느껴. 사랑은 그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설레는 기분이나 짜릿한 감정으로만 존재하지 않잖아.

진짜 사랑은, 구름이 사라져도 괜찮음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아. 구름은 늘 형태가 모호하고 쉽게 흩어지지만,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희미해지잖아. 오히려 가만히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존재의 아름다움과 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지.

마찬가지로, 관계와 인생의 모호함을 억지로 규정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 구름이 사라져도 하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듯, 사랑도 특별한 감정에 붕 뜨는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결국 사랑은 구름을 걷는 설렘이 아니라, 구름이 사라져도 여전히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과 여유에 가까운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