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흔들려 괴로운 나에게,

사랑의 삼각형 이론: 사랑은 네모가 아닌, 세모였다(With love)

by 틈새
운명적인 사랑도 있다고들 하는데, 내 사랑은 늘 오해와 함께했다.


맞아, 사랑은 때때로 오해에서 끝이 나기도 하고, 시작되기도 하는 것 같아. 사랑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랑이 되기도 하고, 사랑이 아닌 줄 알았던 사람이 사랑이 되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만난, 우정 같기만 해서 사랑이 아닌 줄 알았던 Y와는 어느새 비밀 연애를 하고 있더라고. 비밀 연애는 온전히 그의 의지였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다는 그의 뜻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를 존중하고 싶었어. 그러나 존중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인 나는 그가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어. 그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때면 나를 창피해하는 것 같다는 의심도 들었고, 떳떳하게 공개 연애를 하는 커플을 보면 알 수 없는 질투감에 휩싸여 숨죽여 울기도 했지. 그러나 Y는 특유의 온유한 태도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꾸준히 설명해 주었고, 그 설명이 내게는 다른 형태의 사랑을 느끼게 했어. 그렇게 나름의 평화로운 사랑을 이어간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지.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사랑에는 친밀감, 열정, 헌신이 모두 중요하다고 해. (*친밀감은 감정적 연결과 이해, 열정은 육체적 끌림과 감정적 흥분, 헌신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까지 이 세 가지 요소의 결합에 따라 다양한 사랑의 유형이 형성된다.) 이 이론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어느 날 문득, 다른 사람들에게서 Y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열정과 헌신의 깊이를 내가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야. 그들과 무슨 일이 있었다거나, 그들이 내게 이성적인 사랑을 표현했다거나 하는 일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보이는 인간적인 호감에서 혼란을 느꼈어. 비밀 연애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괜히 Y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비밀 연애고 뭐고 간에 차갑게 사람을 내치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지.


헌신이라는 키워드를 늘 함축하고 계시던 분은 사귀기 전부터도 늘 어느 정도의 희생을 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분이셨어. 한편, 열정이라는 키워드의 젊은 사내는 뭐랄까 통통 튀는 매력이 있었어. 그 둘을 보며 이상하게도 자꾸 이 사람들이라면 비밀 연애같은건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괜한 생각이 들었지. 바람도 아닌데 바람피는 것만 같은 불편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 인간적인 호감이라 치더라도, 괜히 나는 연애 사실을 숨기는 게 편치 않아서 더 그랬나봐. 집에 와서 이 사태에 대해 한참을 생각한 후, Y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어. 이내 그도 분명 내게 열정적이던 때가 있었고, 헌신적이던 때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헌신을 보이는 이와 열정을 보이는 이는 사실 그들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하고, 더 알아가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내게는 이미 알아가고 있는, 사랑의 삼각형의 조건을 어쩌면 모두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Y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야. 그렇게 사랑의 오해와 이해의 범벅 속에서 사랑의 진가를 알게 되는 과정에 내가 비로소 봉착했을 뿐이었던가 싶었지.


사랑의 형태는 우리가 생각한 네모, 즉 완전하고 단단한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삐그덕거리며 갈등을겪지만, 결국엔 서로를 담아내는 세모, 그 속에서 계속해서 서로를 보듬고 지지하는 모습이었다.


10년 연애를 하고 결혼한 선배에게 위기가 없었냐고 물었을 때, 흔들린 적 있었지만 참아냈다고 했어. 처음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 사랑을 하는데 어떻게 흔들리지? 하는 마음이 들었기에. 그러나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야. 사랑이란 이상적이고도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은 그런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때때로 흔들리고 의심하는 그런 위험한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런 위험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었던거야.


여전히 비밀 연애를 하자고 한 그가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또 하나의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어. 처음에는 사랑에 빠졌다면, 그 후에는 사랑을 하는 행위자로 내가 존재하는게 사랑인 것 같아.내가 주체가 되어 계속해서 고민하고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니까. ‘사랑을 노력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노래 가사도 있지만, 이 가사는 사랑의 이상화에 기인한 대중적인 오류에 기인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 나라면 이런 가사를 썼을 것 같아. 사랑을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게 말이 되냐고.


사랑의 본질을 잃어갈 때, 바람을 피우고, 갈팡질팡하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는 이들을 여럿 봤어. 웃긴 얘기지만, 나도 내가 그런 상황에 빠질까 봐 두려워. 특히 비밀 연애를 하는 상황이니 더더욱. 너무 예쁘면 인기도 없다는데, 나는 애매하게 생겨서 애매한 인기를 갖고 있는 사람인 건가 싶고. 하지만 사실 문제는 비밀 연애도 애매한 인기도 아닌 사랑에 대한 내 오해 그 자체인거겠지.


그러나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덩어리가 아니며, 끊임없이 갈등하고, 자아를 대면하며, 때로는 혼란을 겪는 여정인 것이다.


그 여정 속에서 내가 내 마음을 지키고, 사랑의 본질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싶어. 아아 나는 아직도 사랑을 배워가고 있구나. 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 익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네. 중년이 되면, 노년이 되면 또 어떨까 기대가 되기도 해. 어쩌면 Y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럴지도 몰라.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어. 나와 너의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것이 사랑의 삼각형의 완성이지 않을까 싶기에.


사랑은 세모난 삼각형처럼,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완성된다고 해. 세 개의 꼭짓점이 각각 다른 요소를 대표하며, 그 균형이 맞을 때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야. 때로는 하나의 요소가 다른 두 요소보다 더 강조되기도 하지만, 결국 이 삼각형은 서로의 다른 특성을 가진세 가지가 만나면서 사랑을 이루고, 그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하지. 그 안에서 우린 계속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하며, 성장할 수 있어. 사람들은 그걸 성숙한 사랑이라고 부르곤 하는 것 같았어.


남들보다 조금 늦게,

그러나 늦은 만큼 깊게,

늘 그렇게 삶을 배워가는 나로부터.


P.S. 사랑의 삼각형 하면 난 엉뚱하게도 버뮤다 삼각지대를 떠올리곤 했어. 미스터리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종종 “사라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변화가 일어나는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지역을 상징하는 버뮤다 삼각지대의 이야기에 홀리곤 했으니까. 비슷하게, 사랑의 삼각형에서도 친밀감, 열정, 헌신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관계는 불안정해지고,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 이는 마치 사랑의 항해에서 갑자기 방향을 잃고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지는 것처럼, 관계가 혼란과 갈등을 겪고, 감정이 왜곡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성은 사랑의 복잡성을 더욱 강조해. 비밀 연애에서 겪는 감정의 갈등이나, 서로 다른 사랑의 양상이 겹쳐지면서 발생하는 혼란을 버뮤다 삼각지대를 닮아 있는것 같기도 하고. 사랑이 가끔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불확실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수있잖아. 그러나 그 불안정함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성장하며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있을거야. 사랑이 완벽해서 믿는게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게 사랑인가보다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