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린 나에게,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 분노의 재발견

by 틈새


교사 생활 1개월 차,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죽는 병을 내가 앓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부장의 머리를 한 대만 내려치고 싶었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만 같다.


문장 속에 깊은 분노가 느껴져.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니? 일의 체계가 부족했니? 상사가 감정적으로 대응했니? 그런 것도 아니라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켰다는 사실이 힘들었니? 말을 하면 “너무 심했나?” 후회되고, 참으면 “왜 아무 말도 못했지?”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했지. 대체 어떻게 해야 덜 후회할까?


회사 생활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훨씬 더 버겁겠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많잖아. 그래도 이런 와중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멋있다고 말해주고 싶어. 어떤 날은 최선이 모여 차선이 되는 기분이 들겠지만, 차선이 최악보다 나은 선택일 때도 있지 않던?


야근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야근을 해야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주는 교장, 비효율적이고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일하면서도 규모만 키우는 부장, 그리고 그 옆에서 일은 하지 않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는 교사까지. 이 상황에서 속이 터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화를 넘어서 거의 해탈한 지경처럼 보여서 애잔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들어. 그렇다고 해서 이 답답한 감정을 그냥두고 볼 수는 없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의 개념을 떠올려 보는건 어떨까. 같은 상황이라도 해석을 다르게 하면 감정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 이는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만들어낸 생각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해.


예를 들어, 부장이 업무 지시를 번복하며 애매하게 말했을 때, “나를 괴롭히려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부장도 윗선의 압박을 받아서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걸지도 몰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즉, 같은 상황이지만,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결이 달라지는거야.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모든 불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여. 하지만 적어도 감정의 균형을 잡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어. 인지적 재평가는 더 나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술일지도 몰라. 다만, 그 기술을 배워가는 과정이 조금 혹독하긴 한건 맞는 것 같아.


‘감정은 해석’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래, 교장이나 부장의 머리를 때리는 상상은 내 감정을 폭력으로 포장할 뿐, 해석의 방향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결국 해석을 바꿔야만 내가 살 수 있다.


해석을 어떻게 바꿀 지도 고민이지? 맞아 이론을 알아도 실천이 어렵지 그래도 그저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길 바랄 뿐이야. 분노가 아닌 유머로, 좌절이 아닌 거리 두기로, 억울함이 아닌 성장의 과정으로. 그래야만 이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지 않겠어?


정말 다행인 점은 좋은 사람들도 곁에 있다는 점이야. 그 점을 잊지말길 바라. 이 분노와 억울함은 그런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지혜로 변모할 수 있을거라고 믿어. 그러니 주말에는 너무 일터 생각 말고, 푹 쉬어. 다음 주도 더 성장한 모습으로 잘해낼거야. 화이팅!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 나로부터.


P.S. 이런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중일 수도 있어. 더 좋은 환경으로 가기 위한 연습일지도 모르지. 부장의 ‘일 키우기 챌린지’에 웃으며 ‘일 줄이기 챌린지’로 대응해보는 건 어때? 아직 초임이라 방법이 서툴 수 있지만, 이제 겨우 1개월 차잖아. 조금씩 알아가면 돼. 지금은 고통스럽겠지만, 그런 태도로 임하면 점점 덜 힘들어지고, 어쩌면 부장까지 포섭할 수도 있을 거야. 분노를 동력 삼아 더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