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임용 준비 안 해? 한 번 해봐~” 근처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이미 나보다 먼저 꽤나 좋은 상담 환경이 갖춰진 친한 선배의 무심한 한마디가 생각보다 깊게 박혔다. 나름대로 기간제 교사 자리에도 만족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부족한 인간으로 보여 저런 말을 하는걸까하는 조금은 과장된 생각. 그러나 생각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이란 피곤하면 잘 발휘되지 않곤 했다. 그래서 이 사람과는 거리를 두자고 마음먹었지만, 다시 만난 선배의 태도는 내가 기억하던 무게와 달랐다. 돌이켜보니 말 자체보다, 그 말에 내가 긁혔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어제도 비슷했다. “운동선수 누구 닮았어요~”라는 말에 속에서 무언가 솟구쳤다. 내 기준에 그 사람은 체중의 측면에서 자기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기에 그 말은 곧 “너는 자기관리를 못했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남이 나의 몸을 보는 방식대로 나의 몸을 보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어렵다. 어릴 땐 ‘속 좁아 보인다’는 게 싫어 억지로 웃어넘겼지만, 이제는 참기 싫어 한마디 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그냥 웃어넘기는 게 더 있어 보인다”라 했고, 엄마는 “왜 몸매를 가리는 옷을 안 입었니”라며 또 다른 말을 덧붙였다. 난 그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단 말을 듣고 싶었던건데. 물론 늘 그 말을 내가 내게 못하는게 문제긴 하다만 늘 이렇게 애꿎은 남들을 탓하곤 한다. 내가 원하는 답을 내게 주지 않았다는 고작 그런 이유로.
이런 저런 생각의 생각 끝에 ‘살로 놀림받던’ 어린 시절과 작년 임용에 떨어졌던 순간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도 우울감으로 인해 도망치듯 나왔던 순간 등등 즉 실패의 순간 순간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다음 날 출근해서는 모니터 앞에서 눈물만 흘렸다. 이미 상담도 중단한 상태였는데 이를 어쩌지. (상담을 중단한 이유는 받을 때마다 더 우울해지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난 결국 예전에 상처를 받았던 정신과에 다시 연락했다. ‘닥치고 약이라도받자’는 심정이었다. 예전 의사는 내가 힘들다 말했을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만 해서 더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초진비를 다른 곳에서 또 내긴 싫어서 그냥 여기에 또 연락을 해서 예약을 했다. 삶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꺼냈을 때의 반응에 또 상처 받는 연속인건지 뭔지. 내가 무뎌지는 수밖에 없는건가 정말? 망할! 그렇게 길을 잃은 분노는 언제나 늘 그래왔듯 다 나를 향했다. 난 늘 왜 분노를 내게 돌리는 선택을 해서 내 영혼을 내가 파괴하는걸까.
우연히 다시 선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안되는 그래도 친한 동료교사다보니 난 요즘의 내 업무적 곤란성에 대해 토하듯 토로했다. 사실 이런 말 하는 것 조차 자존심이 상하지만 혼자 꿋꿋이 잘 이겨내는 사람이고 싶어서 그랬지만 도저히 더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선배는 “지금은 돌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괴로운 것 같다”라고 했다. 대앵. 처음들어보는 말이었다. 돌봄의 욕구?내가?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감춰놓은 욕구였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늘 나를 괴롭게 한 건 외부의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에서 돌봄을 얻고 싶어 하던 내 안의 허기였구나.
어쩌면 삶이 준 상처보다, 그 상처에 대한 주변 반응이 더 큰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커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거다. 애매함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종종 위로 대신 해결책을 주지만, 내겐 지금 그냥 우선 내가 내 감정을 알아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도 정말 아무도 내 감정을 알아주지 않았다. 이럴 때면 참 사무치게 외롭다. 그러나 우선은 내가 내 외로움을 알아봐주는 것부터 시작해야하는거겠지. 그저 내 마음이 느끼는 아픔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살짝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문득 오래된 타블로의 ‘집’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화살을 맞을 때 왜 마음의 과녁이 나만 클까”라는 가사와, “슬픔이 내 집이잖아, 머물겠어”라는 가사가 위로가 되었다. 화살을 피하라는 말보다, 집에서 억지로 나오라는 말보다,그냥 그런 말들이 더 좋다는 걸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라도내 마음을 알아주면 되는 거겠지. 그리고 이렇게 내가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편히 내 어려움을 가볍게 말하면, 그들의 반응에 기대지 않고도 대화를 할 수도 있는 날이 언젠간 오게 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