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이기고 마는 사랑의 속성에 관하여

by 틈새

영문도 모른 채 우울했다가 영문도 모른채 요즘의 나는 우울에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 늪에서 빠져나오는 걸 상상하면 발걸음이 질척거릴 법도 한데, 의외로 내 발은 가볍다. 심지어 내일은 월요일인데도 예전만큼 마음이 무겁지 않다. 물론 지금 상태가 엄청 좋은 건 아니다. 아마 올해중순부터였을까, 가을부터였을까. 모든 게 지겨워졌다. 특히 이 삶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그토록 지겨웠다. 심지어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내가 싫다가도, 남자친구와 있으면 조금은 괜찮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얘한테도 불쑥불쑥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다. 왜 비밀연애를 고수하려는 걸까. 왜 결혼 이야기는 단 한 번도 꺼내지 않는 걸까. 왜 나를 더 보고싶어하지는 않는걸까. 반면 친구들의 남자친구들은 공개연애가 당연했고, 만난 지 석 달 만에결혼을 논하고, 주 1회보다는 더 많이 만나는 것만 같았다. 내 매력이 부족한 걸까. 내 외모가 문제인걸까. 서른, 계약직, 여자라는 조건이 그저 그런걸까. 그 질문들을 당당히 꺼낼 용기는 당연히 없었다. 차라리 상처받기 전에 이 관계를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건 또 나를 기만하는 일이었다. 난 아직 얠 사랑하니까. 사랑하는데도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밀어내는 짓은 20대에 이미 많이 반복했으니까. 결론은 결국 이거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짜쳐서 견딜 수가 없다.


어쩌면 얘가 문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남자친구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결혼과 관련된 의심을 하고 나 자신을 몰아세우는걸까? 결국, 부족한 사랑 때문에 괴로웠던 걸까? 왜나는 남자친구에게서 내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할까. 어쩌면 스스로 내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애인을 통해 가치를 올리려는 사람을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되는 건 생각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파렴치한게 아니라 그저 돌봄의 욕구를 충족받지 못한 사람들 이었을지도 그게 실은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정규직을 향해 달려가면 마음이 조금은 나아질까. 하지만 빌런 가득한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발이 묶인 삶이 과연 내게 맞을까. 생각의 끝은 늘 와장창, 마음을 부서뜨렸다.


그러다 아주 조금은 마음이 나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정규직 사람들조차 회사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아, 맞다. 삶은 원래 고행이지. 여행이라고도 하지만, 여행도 길어지면 고행이 되는 법. ‘일(labor)’이라는 단어도 본래는 징벌을 뜻한다고 했다. 하기 싫은 게이상한 게 아니구나. 그 사실을 깨닫자,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우리들이 가엾어 보였다. 묘한 소속감과 측은지심이 피어났고 그게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날 상사의 이해할 수 없는 지시 앞에서는 그런 마음이 바로 사라졌다. 위로를 짧고 우울은 끝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회사를 때려칠까 고민도 했다. 그래도 올해만 버티면 부서는 바뀐다는데. 다른 부장 선생님은 “아직 그 부장 선생님을 잘 몰라서 그렇다”고 했지만,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일은 못하면서 인정욕구만 커서 모두를 괴롭히는 사람. 그 이상 내가 뭘 더 알아야 할까.


얼마 전, 엄마가 베트남 선교여행을 떠나 계셔서 아빠와 오랜만에 단둘이 식사를 했다. 어색했고, 또 어색했다. 어색함을 깨려고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그래도 부장 본인이 제일 괴롭겠다고. 맞다. 그 사람의 고통이 내 것보다 클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지내왔다. 그 사람까지 사랑할 순 없어도, 아픔만큼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데 말이다. 사람과 아픔은 구분해서 봐야하는걸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조금 바꿔 말하자면 사람은 사랑할 수 없어도 그 사람의 아픔은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려나. 그렇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누군가를 부분적으로는 사랑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드니 조금 숨이 쉬어지는 듯 했다. 이처럼 숨 쉬기위해 사랑이 필요한거라면, 사랑은 반드시 이기고야 마는 속성을 지닌 것 아닐까.


미워하는 건 쉽고, 사랑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에너지로 따지면 미움보다 사랑이 낫다는 걸,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이 사랑을 지켜나갈 힘과 균형, 그리고 조화를 나는 배우고 있었다. 왜냐하면 넘치는 사랑은 불필요한 충고가 되어 상처를 남겼고, 부족한 사랑은 삶을 회의로 물들여 우리를 지치게 했으니까. 이제는 미움 속에 숨어 있는 사랑을 본다. “니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기대 속 좌절된 마음을 본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좌절시키고 있는 당신들의 기대도 본다. 그 모든 걸 함께 애도하는 과정 속에서, 더 깊어진 사랑을 우리가 발견할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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