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해를, 나는 우리의 첫 일출을 보았다

by 틈새

어떤 전시회에서 Y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었다. 서로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채로. 나는 Y를 열심히 그렸다.

선을 고르고, 표정을 담고, 그의 얼굴에서 내가 아는 온기를 남기려 애썼다. 내 그림 속 Y는 조금 서툴렀지만, 그래도 닮아 있었다. 최소한, 내가 본 그의 모습은 담겨 있었다.

전시장을 나오니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었고, Y는 자기 얼굴을 단번에 찾아내며 좋아했다. 나는 내 얼굴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아무리 봐도 없었다. 대신 눈, 코, 입만 그려놓고 옆에 “눈, 코, 입”이라고 화살표까지 붙여둔 그림 하나. 처음엔 초등학생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맙소사, 그게 Y가 그린 나였다. 나는 웃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너무 단순해서 좋다가도, 너무 상상해본 적 없는 단순함이라 신박하면서도 웃기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한 달쯤 지나서야 생각했다. 어쩌면 그게 Y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Y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산다.

어머니는 희귀암을 앓고, 아버지는 사업을 크게 망하셨다.

그럼에도 그는 늘 말했다. 사는 게 즐겁고, 세상엔 재밌는 게 많다고.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신인류는 대체 뭐지.

Y는 빼어난 외모도 아니고,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다.

상사의 스트레스와 돈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회사에 다니지만, 그것이 그의 행복의 핵심인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은 Y와 함께 일출을 보러 갔다. 나는 감성에 젖어 “첫 일출”이라 썼는데, Y는 그냥 “해”라고만 썼다. 첫 일출을 보고도 그냥 해라니. 신박하고 어이없고 웃기고,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저렇게 싱겁게 살아야 삶이 덜 버겁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 직업병처럼 누군가의 말 뒤에 감정과 욕구를 읽어내려 한다. 반면 Y는 앱 개발자라 인풋과 아웃풋으로만 세상을 보려는 것 같았다. 나는 자꾸 들어주고, 책임져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지만, Y는 말을 말 그대로 듣는다. 그래서였을까. 유독 Y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마음이 편했다. 편함의 반대편에 서 있는 불편의 근원지를 쫓아가다 보면, 나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다. 엄마는 “왜 너는 늘 너를 평가하니? 다른 사람도 그렇게 평가하니?”라고 물으셨다. 그 말은 곧 “넌 왜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니?”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늘 조건에 따라 사람을 보라고 가르쳐왔다. 그리고 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과 여성상, 상사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까지 채워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한다. 기가 차고 미칠 노릇이다. 둔감한 사람들에게는 쉽지만, 섬세한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둔감한 사람들이 자신을 강하다고 착각하며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도 힘겹다. 그런 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한숨 쉬는 엄마의 모습도 지겹고, 무엇보다 그런 나 자신이 제일 싫고 부끄럽다.


실토하자면, 요즘 나는 정신과에 가야 할까 싶을 만큼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글들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불편감과 그 불편감에 기인한 우울의 근원지를 파고들다 보니 깨달았다. 나는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회사와 상사의 기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과 인간상, 그 모든 것을 채워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사랑일까.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느껴지는 것일 텐데. 애초에 시작의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내가 우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Y와 같은 인물을 떠올리다 보니, 생각의 끝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도 사업을 크게 망했고, 아내인 엄마는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고통의 시기를 겪으셨다.

사업을 정리할 때 엄마는 마음이 미어진다고 하셨고, 나도 씁쓸한 마음을 숨기느라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의 지난 프로필 사진에는 여전히 망한 사업장의 사진이 있었다. 나라면 화가 나서 지워버렸을 텐데, 아버지는 비관에 빠지기보다, 매일 집 근처 공원을 걷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내 해석하는 능력이 과도하게 발달한 탓에,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은 퇴화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Y나 아버지가 완벽한 인간상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싱거움이 내게 위로가 되었듯, 나의 해석들이 그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할 뿐이다. 우리가 첫 일출에 감격하다가도, 그 해가 매일 떠오르는 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들로 남았으면 좋겠다. 삶이 주는 즐거움에 철없이 웃다가도, 삶이 주는 잔인함을 배반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삶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모순적인 조화가 우리 곁에 오래 남아, 우리가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마음이 들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도 마음이 들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른의 삶이 괴로워진 것 같기도 하지만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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