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야할걸 배우지 못하고, 배워야말것만 배워서 이렇게

by 틈새


어제는 내가 사랑하는 엄마를, 또 사랑으로 키워주신 엄마의 엄마의 구순 잔치였다. 가끔 미운 말씀도 하시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머니에게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감사와 사랑이다. 행복할 때 행복하다고 박수를 치며 표현하는 할머니를 보면, 복잡한 삶도 결국 이런 단순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묘한 찡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그 단순함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늘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셨고, 엄마 역시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다만, 나는 그 노력의 과정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오랜만에 대가족이 모여 아침 11시부터 밤 8시까지, 수다와 술, 커피로 하루를 보냈다. 보통은 할머니의 건강 문제로 간단히 식사 카페 코스로 모임을 끝내곤 했는데, 구순 잔치라는타이틀 덕이었는지 할머니는 쌩쌩했고 모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렇게 다들 기가 쪽쪽 빨린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오랜만에 모여 원없이 실없이 가족끼리 오순도순 보내는 시간이 참 소중하단걸 느낀 눈치였다. 사실 이런자리가 편해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늘 사람들과 있으면 시험대 위에 선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사소한 순간에도, 나는 나 자신을 시험하고 채점하며 감점까지 한다. 강도는 낮아졌지만, 어제도 내면의 나를 향한 평가 과정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왜 사람들과 있을 때 우쭐거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까. 말하고 나면 꼭 후회할 말을 굳이 꺼내놓고, 집에 돌아와 이불 속에서 발길질을 한다. 그냥 듣고만 있으면 될 걸, 굳이 내 멋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튀어나온다. 그 순간엔 잘한 것 같다가도, 금세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사람들은 아마 크게 신경 쓰지도 않을 텐데, 나는 그걸 오래 붙잡는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단체사진 속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얼굴을 보면 숨고 싶다. 특히 방심한 순간에 찍힌 모습은 늘 그렇다. 자연스러운 내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니,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늘 나를 과도하게 의식한다. 말투, 표정, 사진 한 장까지. 다른 사람들은 금세흘려보낼 것들을 나는 붙잡고 괴로워한다. 머리로는 다 안다. 다들 나에게 크게 관심 없다는 것을. 그런데 마음은 늘 뒤늦게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한다. 아마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 나 사이의 간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이상적인 나는 언제나 조금 더 멋있고, 조금 더 괜찮다. 현실의 나는 어설프고 흔들린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내 얼굴조차 못마땅하다.


답을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서 이런 순간들을 조금씩 견디고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언젠가는 우쭐거린 나도, 사진 속 못마땅한 얼굴도 그냥 웃어넘기고, “그래, 이게 나구나”하고 허락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 구순 잔치에서 찍은 할머니의 사진을 보다가, 나는 다시 할머니의 사랑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조건부의 사랑을준 적이 없었다. 그저 엄마와 나를 장난치는 모습이 귀엽다며 바라보셨고,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90년을 살아 성대한 축하를 받으셨고, 우리는 1년을 살아 서로 생일을 축하한다. 그런데 나는 내게 너무 야박했던 건 아닐까. 너도 나도, 그저 이 생을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수고했고, 축하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이번 구순 잔치의 큰 의미였던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너무 사랑하면 종종 딸처럼 보인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그럼 나는, 나를 내 딸처럼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그냥 내 안의 아이 같은 나를 바라보며 꺄르르 웃고, 유치하게 굴고, 소소하게 즐기면 어떨까. 그럴 때조차 누군가가 예쁘다고 봐주듯, 나도 내 자신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보내고 싶다. 그렇게 바라보니, 모두가 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딸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니, 세상에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이번 구순잔치에서 작은 이벤트처럼 할머니와 할머니의 어머니를 합성한 사진을 선물로 드리기도 했는데, 문득 구순 잔치가 되어서야 할머니도 누군가의 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내가 웃겼다.


그런 것 하나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배울 것이 얼마나 많은가. 외모, 학벌, 스펙 같은 것들로 가려진 진짜 삶의 배움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그동안 배워야될걸 배우지 못하고, 배워야 말것만 배워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힘든 걸까 싶어, 마음이 괜히 시큰해졌다. 학교나 사회가 가르쳐주는 것들은 대부분 시험과 성적, 기술 같은 ‘해야 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 정작 인간으로서 느끼고 성장하며 배워야 하는 ‘삶의 중요한 것들’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자꾸만 공허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그 공허를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묻는 멍청이가 되지는 말아야지. 우선, 내가 나 자신에게부터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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