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작은 혁명

by 틈새

“봄과 여름에는 불안과 분노로 불타는 오징어 같았는데, 가을과 겨울에는 슬픔과 우울이 땅굴까지 파고들어가는 두더지처럼 살 예정인가 보구나.”


한껏 말수가 줄어든 늦여름, 초가을의 나를 보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물론 내가 엄마의 말에 조금은 살을 붙인 부분도있지만 저런 위트와 비꼼의 콜라보는 엄마의 주특기였다. 엄마는 이어서 내가 먼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고도 하셨다. 내가 그렇게 요즘 말이 없었나? 실은 잘 몰랐다. 그저 최근에 한 심리검사 결과 우울이 극심하다고 하니 엄마에게 이 부분을 전달을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을 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나를 비하하며 슬퍼할 때면, “내가 좋아하는 우리 딸, 그만 괴롭히라” 하시곤 했다. 엄마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위로를 받았다. 그런 엄마를 보면, 고맙기만 했는데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든 건지 뭔지 미안함도 자꾸만 커진다. 난 왜 자기비하와 불안, 우울이라는 ‘불효’를 알면서도 끊임없이 저지르는 걸까. 이유가 명확하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마치 둥둥 떠다니는 공기처럼,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내게 원인이 되는것만 같았다. 그나마 잡아낸 우울의 키워드는 서른, 여자, 계약직 뭐 그정도?


서른인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30년 동안 내가 나를 알아가며 쌓아온 데이터는 소중했기에. 그러나 주변의 “생각보다 나이가 있네, 결혼해야지, 노산 주의해야 한다”라는 식의 가벼운 말들이 자꾸만 내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나이어린 사람들을 부러워해야 할 것 같은 압력 속에서, 나는하나도 부럽지 않은데도 부러워해야 할 것만 같은 당위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듣다보니 문득 서른인데 나 왜 아직 번듯한 직장도 없지? 왜 성공경험 하나 없지? 왜 모은돈도 한 푼 없지? 라는 의문에 빠지기도 했다. 난 정말로 단 한 순간도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는데 결과는 왜 꼴이지 싶은 그런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의 끝엔 ‘아니 나도 결국 결과로만 나를 평가하는거잖아! 꽤나 멋없고 짜치는데?’라는 식의 자기 비난이 있었다. 그러면 그대로 늪. 도통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우울과 불안의 사이클에 빠지는거다.


여자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여자인건 내가 선택한게 아닌데, 살다보면 마치 성별이라는 것은 내가 선택해서 그 성별에 맞춰 무언가 해야만하는게 있는 것 처럼 느껴지곤 한다.예를 들면, “여자니까 예쁘고 착하면 되는거 아니냐 넌 그런 편이지 않냐”는 식의 말들은 내게 순간적인 기쁨을 주기는 하지만 장기적인 불편감으로 다가오곤 했다. 예쁘다는 말은 여자가 언제나 좋아하는 말이라고들 한다만서도, 계속 듣다 보면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면 안될 것만 같은 압박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압박은 자주 내 삶에서 집착이 되기도 했다. 내 안에 어떤 힘이라도 있으면 그런 말도 떨쳐낼 수 있을 텐데, 자책이 더해지면 게임 끝. 그대로 외모의 굴레에 빠지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외모로 평가받는 순간마다, 내면의 힘과 능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된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나도 내 내면의 힘과 능력을 잊고 살게되면서 외모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는건 또 아니었을까.


요즘 사실 서른의 여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보다도 더 내가 화가 나는 부분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계약직이라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 것. 사실 나는 오히려 한 직장에 묶이지 않아 자유롭고 좋다. 하지만 잘 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또 흔들린다. 어쩌면 흔들리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람들의 말들과 시선에 괜히 불안해지고, 안정적이지 못하니 결혼 부적격자인가 싶은 마음도 생긴다. 연애 프로그램에 나온 한 여성분이 계약직이라는 걸 밝히지 않아 논란이 된 이야기를 보면, 또 괜히 찔리기도 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한 시험을 꼭 봐야만 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 건가 싶기도하고. 계약직으로 사는 것도 제법 두려운 일이지만, 한 직장에서 싫은 사람을 만났는데 평생을 봐야 한다는것도 그 일 하나에 묶여야만 한다는 것도 꽤나 두려운 일이 아닌가? 어떤게 더 두려운 일인건지는 분명 사람마다 다를거다. 그러니 하나의 답이 정답인 것처럼 여겨져서는 안될터인데, 왜 늘 그런 식의 오류는 일상화되어있는걸까? 어쩌면 난 이 오류에서 분노를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말이야 결국 툭 까놓고 말하면, 당신들에게 좋은 게 내게도 좋은 건 아니잖아요.’


글을 쓰다 불현듯 내뱉은 마음의 소리였다. 묘하게 가슴이 이상하게도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사회적 관습이 어느 정도의 지혜일수도 있겠지만, 그 지혜가 내겐 필요없는 지혜라면? 설령 먼 훗날 후회를 하더라도 이 순간의 내게는 버거운 지혜라면? 어쩌면 나는 오징어도, 두더지도 아닐지도 모른다. 봄과 여름엔 불타오르는 불꽃일 수도 있고, 가을과 겨울엔 땅굴을 파는 씨앗일 수도 있었던 거다. 그냥 내가 그걸 몰랐을 뿐. 그러면 이제는, 그냥 한 번 그렇게 나를 새롭게 정의하고, 그런 나를 믿어볼까? 주눅 들지 않고 어깨 당당히 피면서 사는, 서른, 여자, 계약직으로 살아볼까? 불안을 다 품어버릴자애로운 불꽃처럼, 우울을 한껏 싹틔워버릴 씨앗처럼?


늘 다짐을 해도 무너지는 나였지만, 서른, 여자, 계약직이라는 키워드를 짊어진 채 위축의 끝을 찍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중요한 건 다짐이 결코 무너지지 않는 완강함이 아니라, 무너질 때조차 남이 아닌 나를 위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평생을 ‘좋은 삶’을 향해 달려왔지만, 그 결과값이 고작 지금뿐이라는 억울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 억울함의 뿌리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사회가 규정한 좋은 삶을 좇아온 데 있었다. 고로 난 그 세 키워드를 파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그렇다면 별 수 없다. 파괴를 택하는 수 밖에. 주체적 파괴를 통해 단독자로서 나만의 세계를 설립하는 수 밖에. 어쩌면 이것은 내 안의 작은 혁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