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래 미루고 미루던 정신과에 갔다. 정신과에는 어떤 사람들이 올까 몰래 흘깃흘깃 대기실의 사람들을 그러면 안될걸 알면서도 궁금해했다. 대기실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엄마뻘 아주머니, 체격 좋은 30~40대 남성, 보호자와 함께 온 고등학생 등등. 겉보곤 당연히알 수 없는 각자 내면의 증상들. 새삼 이상했다. 저마디의 아픔을 갖고 사는 우리는 왜 멀쩡한 척 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걸까. 각자의 한계가 다르다는게 그렇게도 이해못할 영역인건가.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끝없는 조금은 실없는 물음표들. 그나저나 혹시 저 고등학생이 우리 학교 학생이면 어떡하지? 더 나아가 상담교사가 우울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떡하지? 나라면 과연 뻔뻔하게 “그래서 뭐요? 오히려 좋죠뭐~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앞으로 상담은 계속해서 할 수 있을까?
사실 가장 궁금한 건 단 하나였다. 내가 나아질 수 있을까. 3년 전, 회사 번아웃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는 약을 처방받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나쁘진 않았나 보다. 이번에는 검사를 하지 않고 바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3년 반 만에 오셨는데, “그때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셨다. 선생님도, 나도, 당시 기억은 흐릿했지만 기록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문제는 회사였다. 두 회사 모두 난이도가 높았고, 나는 그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으악, 이 회사 뭐야?” 하며 다른 회사를 찾아보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한 번 고통스러우면 그게 영원의 고통을 뜻하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때도 느꼈지만 약간 꼰대스러운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필요할 법한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 나잇대 누구나 겪는 상황인 것 같은데 불공평함을 그냥 넘기는게 잘 안되는 사람인 것 같네요. 그리고 우울이 베이스로 깔려 있으니, 항우울제 도움을 받아도 괜찮을 것도 같고요.“ 다행이었다. 약 처방을 받았다. 나아짐 유무보다도 나아질 수도 있단 희망이 생긴 것에 나는 안도했다.
집에 와서는 내 마음을 곱씹었다. 기질적 우울, 즉 섬세하고 예민한 나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공감과 정의감을 잘 느끼는 만큼, 결여될 때 큰 타격을 받는 사람으로 생겨먹은거구나 내가.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오랫동안 참 미워했구나. 아니 실은 혐오해왔구나. 왜 난 착하고 강인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아닌걸까하며 자책만을 해오던 나였는데 이제는 그냥 받아들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내가 개척해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멘탈의 약함이란 무엇이고 멘탈의 강함이란 무엇일까. 그게 뭔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만, 사회가 정의하는대로 그 정의를 따르진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 강함이란 눈물과 사랑과 정의감이 많은 사람, 즉 나이다. 난 날 강하다고 정의하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사실상 나는 내 인생이 안정된 루틴 안에서 흘러갈 줄 알았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서른 즈음에는 결혼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 여성의 전형적인 사회에서 규정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렇게 내게 큰 불안과 울울을 줄 지는 몰랐다. 이제 알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임용, 창업, 공방, 이런저런 말을 가려내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좇아야만 한다. 실패하더라도,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다. 누구보다 예민한 나의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르겠디만서도.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 말이 상담을 공부하면서 허무맹랑하다 생각했는데 실은 상담의 가장 큰 핵심을 이루는 말인 것도 같다는걸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