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기제 심리학(이정기)
내가 마주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과시'와 '부정'으로부터, 여성들은 '겸손'과 '억압'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못해 보였다. 나 또한 만만치 않은 상처와 그에 못지않은 방어기제를 끌어안고 살아온 터라, 사람과의 관계가 늘 숙제처럼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발견한 한 문장, 방어기제는 상처의 흔적이라는 문장.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서로의 날 선 모습들이 사실은 깊은 상처의 산물임을 진작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그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허세를 참아내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거칠고 거창한 겉모습 너머를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사실 "약해 보이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상처 입은 소년의 눈물겨운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남성들은 흔히 ‘여자어’라 부르는 여성들의 이중 메시지를 답답해한다. 하지만 그 모호한 언어 뒤에 숨은 본심을 읽어주었어으면 어땠을까? 그것은 "내 욕구를 정직하게 드러내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오래된 억압과 상처가 만들어낸, 슬픈 자기보호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갑옷'에 대고 화를 내느라, 그 안에서 떨고 있는 '아이'를 놓치며 살아온건 아닐까. 상대의 방어기제가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려는 처절한 방패였음을 알았더라면… 그 방패의 무게를 가늠해 보며 서로의 손을 잡아줄 수 있었다면, 우리의 관계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다정하고 단단했을텐데 그게 종종 아쉽다.
결국 방어기제는 아픈 흔적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받고 싶어 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인간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 딱딱한 껍데기 아래 가려진 서로의 진심을 조금 더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싶건만… 이상하게도 그 다짐은 상처의 재현 앞에서 너무도 무력하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며 우리는 왜이리 날이 서있을까.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건 결국 우리라는 생각을 자주한나. 그리고 그 말은 곧, 우리를 안아주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라는 얘기니 희망을 조금은 간직하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