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끝장을 내는 나....
핀란드 여행기를 올리려고 [브런치]를 시작했으나 미루고 미루다, 2년이 지난 오늘에야 다시 브런치에 접속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비번도 까먹어서 리세팅해서 로긴했다. 세상이 팬데믹으로 어수선하고 락다운으로 어쩌다 집 안에서 실내 온실생활만 하다 심심해서 시작한 발효빵만들기, 그 주제로 여러꼭지를 빵관련 이야기로 브런치를 채웠다. 그러다 서서히 경제상황이 문을 여는 틈에 이것저것 한눈을 파느라 글쓰기에 완전 손을 놓기를 2년, 이제 2021년을 마감하는 연말이 왔으니 2022년 새 해를 시작하기 전 밀린 일들을 마무리해야지.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올른 나의 [브런치] 어카운트.
나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이야~~~하지만...습관적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을 "procrstinator"라고 하지? 그게 딱 나였다. 뭐해야지~하고 맘먹기를 수십번을 해야 비로소 몸이 따라가는, 때론 뭐해야지 생각만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예전에는 할 일들 딱 정리해서 리스트를 작성해 하나씩 실천해 나갈 때 마다 지워가며 모두 실천해나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성사되지 않을 때면 한숨도 나고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점점 내 인생에 자신이 없어지고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져 갈 쯔음, 팬데믹이란 세기의 큰 일을 겪으며 나의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해 나가게 되었다. 나에게 이런 부분도 있구나, 내가 이런 사람이였나? 내가 처음으로 낯설다. 팬데믹이란 기나 긴 터널같은 시간을 지나오며 내가 살아 온 시간들을 뒤돌아보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과연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엄마로써, 아내로써, 가족의 일원으로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내가 '나에에 주어진 24시간'을 앞으로 어떻게 보내야할까? 팬데믹 기간에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듣느라 정신없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기에 내가 지키고 있어야했다. 지켜보는 상황에서도 잠시 한 눈을 팔면 ZOOM을 안듣고 게임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볼 때면, '쟤는 진짜 커서 뭐가 될려고 저러나?" 아마도 우리 엄마도 귀에 라디오들으며 졸고있는 날 보며 같은 생각을 하셨을 거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1년을 집에서 온라인으로만 수업들으니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밥을 하루 3끼 해먹이다 지쳐, 하루에 한끼 정도는 사다가 먹이기도하고 딜리버리시켜서 먹기도하고, 그러다 2끼를 외식으로 떼우기도하고 하다가 식비가 너무 많이 들어 다시 하루 세끼를 만들다가 지쳐 주말만 기다리게 되는 챗바퀴 도는 듯한 시간을 일년을 보냈다. 드뎌 애들이 학교에 가길 시작하니 다시 도시락을 싸느라 5시에 일어나게되고 잠은 모자르고, 애들 픽업다니느라 오후시간은 정신없고 벌써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해가 5시면 떨어지는 겨울이 왔다. 따끈한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 학교가기 싫다는 둘째아이 이불을 재껴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좀 더 재우지못해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이럴때는 온라인으로 수업하던 때가 편한가 싶다가도 학교에가서 뛰어놀기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행복해 하는 아이들을 보니 학교 오픈하길 첨만 다행이다 싶었다. 게다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니 팬데믹으로 찌운 살들이 쏙 빠지는 아들을 보니 역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socialize하고 몸을 움직이는게 꼭 필요한 시간들인 것 같다. 팬데믹때는 가족들이 함께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를 하게되니 아이들과 놀 시간은 별로 없지만 나만의 시간이 생겨서 좋은 것 같다.
나만의 시간도 잘 보내야 내 시간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Netflix 시청시간으로 또는 SNS만 하는 시간으로 채워지면 삶이 무료해진다. 나 또한 내 시간을 그리지내다 지루하여 Career Development이란 걸 해보기로 작정했다. 애들 학교가고나면 나른한 시간들을 공부로 채워 애들 대학교에 가고나면 발전적인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Computer Engineer 혹은 IT Technician 같은 직업이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가 없다. 한때 꿈꾸던 NOMAD Life Style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쪽 일을 하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나 local처럼 몇 달 혹은 몇 년을 지내며 내 일을 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기에, 일단 프로그래밍 랭귀지인 Python을 유투브를 통해 기초적인 것부터 배워나갔다. 초반에는 재밌다가 중급으로 들어갈 수록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대체 뭔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 듣겠더라. 프로그래밍 언어야 말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인데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는게 아니라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은 배워야 좀 알아들을 정도가 되는 것이였다. 유투브를 보면 4시간에서 8시간 CRASH COURSE로 나오는데, 처음엔 이것만 들으면 일을 할 수 있나보다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 정규과목들을 돈내고 배우기 시작하였더니 내가 본 것들은 맛보기에 해당하는 아주 기초적인 부분이였다. 정규과목은 아주 비교도 안되게 심층적인 내용으로 깊게 들어가는 데 replay로 듣고 또 듣고 그래도 못알아 듣기 일쑤였다. 일단 Python은 Intro만 하고 진도를 못나가는 탓에, Data Science의 기초라하는 SQL 입문하였다. 이제 겨우 50% 들었는데 산 너머 산이라고 시간이 갈 수록 차암~ 쉽지않다. 휴~ 원래 목표는 Google Data Analytics인데, 듣다보니 data science의 기본이 python과 SQL이 필수라고하여 일단 SQL부터 배워나가는 중이다.
공부만 하다보면 지루한 법, 나에게 쉬어가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공부하다 틈틈이 쉬는 시간에는 북유럽 여행기를 정리해 보려한다. 50일 동안의 나의 꿈같은 일상을 사진과 글고 남겨보려한다. 겨울나기는 2019년 초였으니 거즘 2년이 지나는 지금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는 나, 진정한 procrastinator라 할 수 있겠다.
2019년 겨울은 나에게 아주 커다란 선물이였다. 엄청난 눈을 볼 수 있는 기회였고, 무시무시한 추위를 겪은 겨울이였다. 산타할아버지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 가보는 길도 처음 겪어보는 일도 많았지만 세상이 참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였으니....힘들면 쉬었다가면 되지. 자고싶을때 자고, 먹고싶을때 먹고, 이렇게 심플한 것을 나는 내 맘데로 안된다고 짜증부리곤 했었다. 막상 내 스케줄대로 살다보니 막상 별거 아니였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학교 보내고, 중간에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하고,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사실은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였다.
나의 스케줄은 대충 이랬다. 졸리면 자다 일어나 일단 뜨거운 티를 마시고, 밥해먹고 장보러가고, 운동삼아 근처 걸어다니고, 관광객모드로 새로운 장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여보고, 글쓰고(이땐 왜그랬는지 영어로 써서 다시 한글로 쓰고있다는 ㅎㅎ), 사실은 이때 핀란드에 이민가고 싶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비지네스플랜도 써서 내고 이민 상담받고, 지역교회에가서 교민들 만나 이민생활에 대해 들어보고 내가 과연 이 생소한 나라에 와서 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추운 날씨는 운동으로 이기면 되고, 미국에 비해 비교적 여유로운 여가시간은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아서 취미를 직업으로 가지는 꿈을 꾸며 매일 <핀란드의 꿈>을 꾸었다.
살기 전에 직접 가봐야한다라는 생각에 떠난 50일 간의 북유럽 생활기, 그땐 좋았지만 막상 미국 집에 돌아오니 일단 언어가 통하는 미국이 세상 편하구나. 나 혼자 살기엔 걱정없지만 애들과 남편은 핀란드 이민을 결사반대하는 탓에 진짜 꿈을 꾼 것만으로 행복했다. 현실적으로 핀란드에 연고도 없는 내가 가서 살 수 있는 길은 없기에, 나의 집이 있는 엘에이에서 핀란드의 꿈을 꾸며 글을 적는 것으로 만족한다. 적은 미국에 두고 핀란드는 여행만 가는 걸로 마음을 달래본다. 언제 다시 가볼 수 있으려나. 여행업을 하며 일년의 반은 미국에서, 반은 북유럽에서 보낼 수만 있다면 딱 내가 꿈꾸는 인생이다! 나의 꿈은 여행을 업으로 하며 살아가는 것!!! 조금씩 천천히 그 길을 찾기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보려한다. 일단은 글로 북유럽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걸로~